'제국, 그 사이의 한국' 앙드레 슈미드 지음 / 정여울 옮김 / 휴머니스트 발행 / 2만8,000원

우리나라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매우 독특하다.

이는 서양의 국민국가(Nationstate) 개념과 유사하지만 여기에 ‘한겨레’라는 인종적 요소, ‘민족혼’ ‘단군의 후예’ 같은 정신적 요소까지 포함돼 있다.

<제국, 그 사이의 한국>은 ‘민족사관’도 ‘식민사관’도 갖지 않은 제3국 학자의 눈으로 근대 한국에서의 민족주의 형성 과정을 분석한다.

저자는 근대화, 산업화와 민족주의 형성을 한 국가의 자연스런 발전과정 중 하나로 보는 서양식 관점 대신 제국주의 치하의 환경 등 한국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해 이 개념의 형성 과정을 논한다.

예를 들어 민족주의에 유난히 정신적인 요소가 강조되고 민족혼 같은 추상적 개념들이 만들어진 이유는 당시 우리에게 국권이나 국토 등 나라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실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특히 1895~1919년 사이에 ‘애국계몽운동’을 이끌었던 한국 지식인들의 글들이 현재와 같은 개념의 민족주의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보고 집중 분석한다.

당시 신문의 발행 부수는 보잘 것 없었지만 이 신문들에 글을 쓰는 지식인들의 영향은 대단해서 이토 히로부미도 “한국의 신문기자들이 펜대 한번 움직이는 것이 내 입에서 나온 수백 마디의 말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한국인을 움직인다”고 말한 적 있다.

당시 신문을 통해 나타난 민족주의는 열등감에서 자부심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호에서 느껴지는 자긍심과는 정 반대로, <독립신문>의 일관된 논조는 이런 식이었다.

“전 세계에서 조선이 가장 약하고 가난하고 가장 밑바닥이며 왜 다른 나라로부터 전혀 존경을 받지 못하는가?” “다른 나라에는 다 있는 OOO이 없는 유일한 나라는 어디인가? 바로 조선이다.”

그러나 한일합방 이후 문명국 일본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무너지자 단재 신채호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들은 역사 연구를 통해 새로운 민족주의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는 족보 추적을 통해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발견하고, 고구려와 발해 등 북방왕조의 역사를 되살림으로써 민족 중심의 새로운 역사관을 구축한다.

한반도라는 영토가 빼앗긴 상황에서 “과거 한민족이 만주의 영토를 점령했을 당시 광대한 국토의 넓이를 기억하는 행위”를 통해 민족사를 합법적이고 장구하며 거대한 스펙터클로 재창조, 국민들의 열등감을 자부심으로 바꾸어 보려 했던 것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민족주의의 형성 과정을 고찰할 뿐, 이것이 근대를 넘어선 발전 단계에서 사라져야 할 유물인지 등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민족주의의 핵심 개념들이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근대 지식인들의 글에서 발견되듯이 민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열등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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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기자 pariscom2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