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록색 작은 꽃의 은은한 향기… 진홍빛 단풍도 곱게 불타네

무성한 여름이 가버렸다. 아직 본격적인 가을빛은 아니지만 한 달 새에 그 무성했던 한여름의 초록빛이 어느새 빛을 잃어간다. 나무들은 일년 내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언제나 변화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때론 일방적으로 나무의 계절을 정하곤 한다. 꽃이 화려한 때던가, 단풍빛이 고운 때던가. 푸르름이 돋보이는 겨울이던가.

신나무는 좀 억울하다. 알고 보면 빠지는 모습이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특별하지 않다 하여 어떠한 계절의 주인공으로 신나무를 꼽아주는 일이 흔치 않으므로.

5월의 신나무는 꽃이다. 두드러진 꽃빛은 황록색. 작은 꽃들이 은은한 향기를 내며 모여 피어 좋다. 여름엔 그 무성함이 좋다.

신나무가 자라는 곳은 주로 개울가이므로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이나, 세 갈래로 갈라진 잎새들이 바람 따라 살랑이는 모습이나, 익어가는 잠자리 날개를 닮은 열매들의 독특함이나, 그저 언제나 자연의 일부이듯 한 여름의 신나무는 자연스럽고 싱그럽기 그지없다.

가을이 되어 물드는 단풍빛도 곱다. 때론 아주 강렬하기도 하다. 하긴 이 신나무도 단풍나무집안의 식구이니 단풍빛이 고은 것은 당연하다 싶다.

일정하진 않지만 기온차와 수분조건이 잘 맞으면 불붙듯 붉게 물들기도 하고 노란빛이 함께 어울리기도 하여 여간 멋진 것이 아니다. 이쯤되면 왜 신나무를 제대로 몰랐을까 싶다.

단풍나무과 단풍나무속에 속하는 전형적인 이 집안 식물이면서 이름이 무슨 무슨 단풍이 아닌 신나무라고 붙은 이유도 이 나무를 단풍드는 고운 가을나무로 취급하지 않은 원인일 수 있고, 잎을 보면 5-7갈래가 아닌 3갈래로 갈라지고 가운데 잎 조각이 유난히 큰 특징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풍나무 집안에서 잎이 3갈래로 갈라지는 종류에는 공원이나 아파트 정원에 간혹 심는 중국단풍도 있지만 중국단풍은 잎조각 가운데 부분이 그리 크지 않고 잎가장자리가 밋밋한 것이 큰 차이점의 하나이다.

신나무란 이름의 뜻은 잘 모르겠다. 맛이 시다라는 이야기에서부터 여러 설이 있지만 옛 말로 “싣나모”에서 신나무가 되었다고도 한다. 옛 사람들은 이 나무의 단풍빛이 단연 돋보여 색목(色木)이라 하였다고도 하는데, ‘색’이란 한자의 발음이 우리 말로 ‘싣’이 되어 그리 붙었다는 추정이 꽤 유력하다.

게다가 신나무의 유력한 쓰임새의 하나가 염료이다. 우린 물은 회흑색의 물감이 되는데 스님들의 옷인 장삼을 비롯한 법복을 물들이는데 빠지지 않게 중요하고도 널리 쓰였다고 하니 여기에서 “색”을 내는 나무라는 뜻이 추가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이름은 다조축(茶条槭)이다. 새싹을 차로 이용한데서 나온 이름인듯하다. 일본이름은 녹자목풍(鹿子木楓)으로, 나무껍질에 새끼사슴마냥 얼룩이 있어 붙은 이름이라 한다.

약으로도 이용돼 그중에서 어린 순과 잎은 간장염, 어린 나뭇가지는 눈병을 치료하는데 쓰였다고 한다. 모습이 좋으니 조경수로 적합하고 분재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좋은 염료로서 한번 물들이면 회색이지만 여러 번 물들이면 그 수에 따라 다양한 농도의 검은빛이 된다 한다.

다가온 가을에는 신나무의 제대로 된 가을빛을 한번 느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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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