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중심 시원한 편집으로 20대 여성 겨냥 배두나·손미나·엄정화·박수진 등 출간 러시… 작가들도 동참, 김지하·김영하 등 책 펴내

엄정화(배우), 김지하(시인), 박수진(스타일리스트)의 공통점은? 모두 올해 ‘여행에세이작가’로 데뷔했다는 점이다. 소설가 김영하, 임동헌도 최근 이 대열에 합류했다.

올 들어 다양한 부류의 유명인들이 여행에세이를 출간, ‘붐’현상마저 보이며 출판계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이미 일부 유명인의 여행에세이가 선풍을 일으킨 바 있지만, 올 들어서는 그 스펙트럼이 훨씬 넓어지는 양상이다.

지난 해 배두나의 <두나’s 런던놀이>는 출판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여행에세이는 인기 없다’는 공식을 깨고 출간 3일만에 서울 대형문고에서 절판 됐기 때문.

곧 이어 출간된 아나운서 출신 손미나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 역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으면서 여행에세이는 출판계에서 ‘돈이 되는 상품’으로 떠올랐다. 인지도를 갖춘 유명인, 그리고 글보다 비주얼 중심의 여행에세이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

올해 유명인들의 여행에세이 출간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여기에 적극적인 유명인은 주로 배우와 문인이다.

배우 엄정화는 38일간의 뉴욕 생활을 일기로 엮어낸 <뉴욕일기>를 5월 선보였다. ‘탤런트 전광열 부인’으로 더 잘 알려진 스타일리스트 박수진은 런던 유학 경험과 런더너(런던주민)들의 인터뷰를 담은 를 내놓았다. 배두나는 지난해 <런던놀이>에 이어 올 7월 <도쿄놀이>를 다시 내놓아 현재 인쇄 4만부를 돌파했다.

<두나’s 런던놀이>와 <엄정화의 뉴욕일기>를 기획한 윤온저 씨는 “<런던놀이>를 기획했을 때만해도 이 책이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포토에세이는 다른 분야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반면 성공 사례는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런던놀이>의 성공으로 올해 발간된 <도쿄놀이>는 1년간 기획에 걸쳐 탄생했다. <엄정화의 뉴욕일기>의 경우 5월 출간 된 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은 뉴욕의 ‘세인트 마크 북’샵에 한국어 버전 그대로 입점했다.

은 박수진 씨의 2년 간 런던 유학생활이 묻어난 책이다. 24명의 런더너 인터뷰를 함께 실어 사실감을 더했다. 기획자 조경자 씨는 “현지인을 인터뷰한 독특한 컨셉트로 주목 받고 있다

. 필자를 바꿔 뉴욕과 도쿄, 파리 등 생활기를 다룬 ‘REAL 시리즈’를 계속 출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인들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 주로 글 중심의 문학작품에 매진해 온 유명 작가들이 사진을 곁들인 포토에세이 형식의 여행기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파격이다. 일각에서는 “문학의 트렌드가 바뀌는 방증”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소설가 김영하는 8개 도시를 8대의 카메라로 여행한 후 사진과 에세이를 엮어 8권의 <여행자>시리즈를 출간한다. 최근 나온 1편의 무대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두 번째 여행지 도쿄 편은 내년 상반기에 출간 예정이다.

아트북스 최지영 씨는 “문자 언어인 소설과 시각 언어인 사진을 통해 이미지 세대의 독자층을 적극 끌어들이고자 했다”고 기획 취지를 밝혔다. 사진이 주가 되는 만큼 사진의 질감을 표현하는 종이 재질까지 작가와 상의하는 등 편집에 공을 들였다.

소설가 임동헌은 국내 작가 15명의 ‘작품 속 명소’를 다녀와 책으로 엮었다. <한국의 길, 가슴을 흔들다>에는 신경림의 ‘겨울밤’과 ‘목계장터’에 나오는 충주 노은면 연하리 길, 이청준의 ‘눈길’에 등장하는 전라도 장흥군 진목리 길 등 국내 대표적인 길 15곳이 사진과 함께 소개된다.

시인 김지하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예감>을 써냈다. 아시아, 유럽, 미국, 베트남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그 기록을 시로 남겼다. 책에서 눈에 띄는 점은 부인 김영주 씨와 함께 그린 먹그림. 대부분 여행에세이가 사진을 싣는 반면, 김지하는 ‘주역’으로 바라본 세계를 먹그림으로 남겨 43장을 책에 실었다.

최근 여행에세이는 ‘한비야’로 대표되는 90년대 여행에세이와 비교해 사진의 비중이 훨씬 커졌다는 특징이 있다.

배두나 김영하 등 대부분의 작가들이 직접 찍은 사진을 글 이상의 비중으로 싣는다. 다시 말해 사진과 이미지 중심의 편집이다. 이들의 책을 단순히 ‘여행에세이’라 부르지 않고 ‘포토에세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편집 방식은 최근에 출간된 포토여행에세이가 20대 여성을 주 타깃으로 한 기획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에세이와 비교해 타깃 독자층이 좁아진 것도 한 가지 특징이다. 한비야, 유홍준 등 90년대 여행에세이가 10대에서 40대까지 폭 넓은 지지층을 확보한 반면, 최근의 포토에세이는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 여성들이 주 독자층이다. 때문에 감각적인 에세이가 많다.

북칼럼니스트 이우일 씨는 “예전 여행서가 깊이를 추구했다면 최근은 점점 가벼워지는 추세”라며 “2000년 이후 배낭여행과 디지털카메라의 일반화로 독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에세이에서도 원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저자 역시 배우, 스타일리스트, 문인 등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우일 씨는 “유명인들의 에세이는 마케팅 측면에서 저자 마케팅이 가능하다. 적은 비용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포토에세이가 출판계에서 뚜렷한 트렌드로 정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트북스 최지영 씨는 “우리나라 독자는 사진을 하나의 텍스트로 보지 않는다.

독자들은 글과 사진이 함께 담겨있는 경우 글을 중심으로 그 책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영하 <여행자>의 경우 독자들은 ‘적은 분량의 에세이를 사진으로 채웠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최지영 씨는 “포토에세이의 경우 ‘글 중심주의’와는 다른 독법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이들 에세이는 글과 사진의 조화에 기획의도가 있는 만큼 글보다는 사진과 책 자체를 즐기는 것이 좋다.

● 소지섭 등 포토에세이 인터넷서 인기 폭발

오프라인 시장에서 포토에세이가 주목을 받음에 따라 유명인들이 온라인에서도 속속 포토에세이를 선보이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연재하고 있는 ‘소지섭의 포토에세이’는 현재 네티즌 조회 수 40만을 돌파했다.

배우 소지섭은 지난 한 달 동안 ‘THE CITY’ ‘THE MEMORY’ ‘THE SCENE’ ‘THE Humming’ 등 네 가지 테마로 자신이 직접 찍은 18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또 ‘신부’ ‘낡은 소파’ ‘미련’ 등의 사진과 함께 짧은 감상을 적은 에세이도 소개하고 있다.

아나운서 출신 손미나, 포토그래퍼 김홍희 역시 네이버 포토갤러리를 통해 포토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각각 20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3036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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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