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과인(상·하) / 김탁환 지음 / 민음사 발행 / 각권 9,500원

사극 <불멸의 이순신>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김탁환이 ‘백탑파’를 소재로 한 세 번째 장편소설을 냈다. 백탑파란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 서울 종로 탑골 내 백탑(원각사지 10층석탑)을 모임 장소로 삼았던 조선 중기 실학자들을 가리킨다.

전작인 <방각본 살인사건>과 <열녀문의 비밀>은 이들 백탑파가 정조에게 발탁돼 개혁 정치를 펴려는 과정을 담았으나, 이번 작품은 이들이 개혁군주에서 절대군주로 변모한 정조에 의해 ‘문체반정’을 통해 내쳐지는 상황을 그렸다.

세 작품 모두 살인사건을 소재로 이면의 거대한 음모가 드러나는 추리소설 형식을 빌려 젊은 세대들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1792년 정조는 내용과 형식이 상당히 자유로웠던 패관기서와 소품문을 멀리하고 진한(秦漢)의 고문을 모범으로 삼도록 하는 ‘문체반정’을 단행한다. 실학을 장려하고 인재를 등용했던 정조가 당시 최대의 베스트셀러였던 <열하일기>를 금서로 낙인 찍으며 돌변한 것이다.

<열하일기>를 읽기만 해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 상황에서 비밀리에 이 책을 탐독하는 모임인 ‘열하광’ 회원들이 괴한에 의해 잇따라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회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명방이 살인 누명을 쓰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진한의 고문을 지키려는 보수 세력과 중국의 신문물을 받아들인 북학파, 즉 혁신 세력 간의 갈등을 그린 이 소설은 현재의 정치 사회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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