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고 울리는 7인의 감동 무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웃길만큼 웃겼고, 울릴만큼 울렸다.

협소한 소극장 무대에서 단 7명의 배우들로 이만한 효과를 냈다는 것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개인기는 물론, 팀워크도 한 몸처럼 호흡이 맞아떨어진다. 세트도, 안무도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의 역동성을 발휘했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가 서울 르메이에르 소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다. 장윤정 연출의 이 작품은 대학로 극장가에서도 손꼽히는 롱런작 중 하나다. 이미 사건이 터진 채로 막이 오른다. 가톨릭 재단의 무료 병원, 602호의 환자 최병호가 사라졌다. 그는 척추마비로 반신불수 상태다.

최병호는 연말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병원 기부금을 받는데 일조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던 차였다. 신임 병원장 베드로는 최병호의 증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의 행방을 좇기 위해 같은 병실 환자와 출입자들에 대한 내부 조사가 벌어진다.

순수하고 마음 여린 자원봉사자 김정연, 일에 지쳐있는 사무적인 의사 닥터리, 치매로 정신이 온전찮은 할머니 환자 이길례, 알콜중독자 정숙자 등이 조사 대상이다. 마침내 환자 최병호와 스스로 자원봉사자를 자청해 찾아와 이들을 돌보던 소녀가 함께 사라진 사실이 확인된다. 이어 최병호 실종의 숨은 비밀이 밝혀진다.

베드로 역에 박훈, 최병호 역 안세호, 닥터리 공동 배역에 원종환, 성두섭이 출연한다. 김수정, 이미영, 이재경, 박란주는 각각 김정연, 이길례, 정숙자, 소녀 최민희 역으로 등장한다. 한편,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일부 노련한 배우들을 제외하고, 대사 처리력의 평균값은 다소 미진한 편이다. 그러나 일단 노래로 접어들면 사정이 180도 역전된다. 대사 연기에서 볼 수 없었던 뛰어난 감정 표현력이 노래 속에서 불꽃 튀는 생동감을 내뿜는다. 불과 수초 간격으로 코미디와 비극을 오가며 관객들을 쥐락펴락한다. 작품의 약 80%가 노래로 구성돼 있다. 대중적이면서 뮤지컬 음악 특유의 질감이 살아있는 곡들이다.

병실 안의 볼품없는 벽면을 뉴스용 스크린으로 사용한다거나 갑자기 한쪽 벽면을 접어 회전시키면서 담벼락과 공중전화 세트로 사용하는 등의 발상도 산뜻하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각 환자들의 회상 씬 처리, 1인 다역을 가뿐하게 소화해내는 배우 전원의 순발력과 기동력, 재미 또한 높다. 총체적으로 농축된 연출의 힘을 느끼게 한다.

단 한가지, 상당수의 공연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김정연식 인물 설정은 다소 진부함과 아쉬움을 남긴다. 전형적인 캐릭터와 전형적인 대사, 전형적인 역할, 의상 등 교과서적인 한계를 보인다.

아주 오래 전 ‘가을엔 떠나지 말라’고 노래한 가수가 있었다. 피치 못하게 이 가을 누군가를 떠나야 할 사정이 당신에게 있다면, 최소한 떠나는 이유만이라도 상대에게 정직하게 말하고 떠나라.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극중 연인에게 버림받은 상처로 힘겨워하는 정연에게 닥터리가 묻는다.

“정연씨는 사람이 사람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요.” “그럼 사람이 사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뇨.” “가질 수도 없는데 버리는 게 어떻게 있을 수 있겠어요.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공연은 폐막일이 지정되지 않은 오픈런으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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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