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시대' / 앨런 그린스펀 지음 / 현대경제연구원 옮김 / 북@북스 발행 / 2만5,000원1997년 세계 금융위기 등 굵직한 사건 다룬 미국 '경제 대통령'의 회고록

1997년 여름,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던 아시아에 밀려들었던 핫머니가 환율 변동을 예감하고 썰물처럼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태국 바트화와 말레이시아 링기트화의 붕괴로 시작된 일련의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를 강타했다.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미 국무부를 도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아시아 지원책을 자문했으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11월까지만 해도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미국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던 그가 이 위기에 개입한 것은 일본은행의 고위 관계자가 “댐이 무너지려 하고 있다”며 다음 차례는 한국이 될 것이라는 점을 연준에서 경고해 달라고 요청해왔기 때문이었다.

세계 경제 동향을 손금 보듯 안다고 생각했던 그에게도 이는 ‘충격’이었다. 외환 보유고가 250억달러나 되는 한국이 외환위기의 제물이 된다니! 그러나 그린스펀은 그 동안 한국 정부가 외환 보유고를 속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부는 보유 외환을 대부분 시중은행에 매각 또는 융자했고 은행들은 부실 채권 해소에 이 자금을 쓴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외화가 들어있다고 선전했던 곳간은 사실 텅 비어 있었다.

9월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화제와 충격을 불러일으켰던 그린스펀의 회고록 중 한국의 외환위기와 관련된 부분이다. 평소 모호한 화술로 유명하던 그답지 않은 직설적 문체로, 당시 한국 정부에 대해 가진 배신감과 분노를 느낄 수 있다.

숫자와 클라리넷 연주를 좋아하던 소년 그린스펀은 밴드에 속해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도 휴식시간마다 비즈니스와 금융에 관련된 책을 읽는 괴짜였다.

결국 뉴욕대 경영학부에 진학, 학사와 석사 박사학위를 딴 뒤 1954년부터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기 시작했고, 68년 닉슨의 경제자문관을 시작으로 74~77년까지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 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다.

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FRB 의장으로 임명된 후 18년 6개월 동안 활동하다 지난해 1월 퇴임했다. 재임시절 그는 87년 10월 19일 증시 대폭락 사태, 89년 독일 통일, 90년대 고도성장 및 아시아 외환위기, 2003년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에 대처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경제의 ‘유연성’을 목도했다.

책의 후반부에서 그는 중국 경제의 개방과 성장으로 시작된 저 인플레이션과 저금리 시대가 조만간 끝날 것이며, 이때 새로운 위기가 닥치더라도 세계 경제는 또다시 유연성을 발휘해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예견했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도 재미있다. 그에 따르면 닉슨은 똑똑하지만 의심과 편견이 많은 인종차별주의자이며 포드는 능력은 있으나 추진력이 부족한 인물이다.

레이건은 결단력이 최고였으나, 조지 H W 부시와 아들인 조지 W 부시는 경제 정책에 있어 최악이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석유를 위해 이라크전을 일으켰다는 말까지 썼다. 가장 잘 맞는 대통령은 의외로 빌 클린턴이었다.

하지만 그린스펀 자신도 결국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업적을 주로 기술한 반면 실수를 인정하거나 겸허히 반성하는 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올해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를 뒤흔든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문에 따른 금융위기는 사실 그가 FRB 의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마지막 여러 해 동안 지속적으로 금리를 낮추면서 부동산과 같은 자산 시장에 지나치게 유동성이 몰린 데 따른 것이기도 하다. 닉슨을 ‘인종차별주의자’라 부른 것도 유대인으로서 가진 편견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닉슨은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과 미국의 이스라엘 편들기를 비판하는 저서를 낸 후 많은 유대인들의 항의를 받아 왔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