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비싼 형형색색 옷들산과 들은 지금 패션쇼장 방불… 실크 등 과감한 소재 사용도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에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자니 괜히 심술이 난다. 가끔 외출은 해도 시간에 쫓기다 보니 낙엽으로 물든 도심의 운치를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하루쯤은 유유자적하며 자연 속에서 마음껏 자연의 아름다움을 풍미하고 싶어진다. 지난 주말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서울근교의 산을 찾았다. 매캐한 매연이 사라지자 막혔던 코가 뻥 뚫리고, 시야도 확 트이며 답답했던 가슴마저 후련해진다. 무엇보다 가을 햇살에 비친 단풍은 그림보다 아름답다.

그런데 자연감상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등산객들의 형형색색 복장이었다. 등산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름 있는 브랜드의 등산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맵시 나고 편안한 등산복 좀 입고 산에 온 것이 뭐가 아니꼽냐?”라고 따져 묻는다면 할말이 막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연을 찾아온 여행에서도 여전히 패션의 족쇄에 묶여 있어야 하는 도시인을 보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진다.

월요일 출근했더니, 등산을 좋아하는 편집국 선배가 같은 이유로 툴툴거린다.

“요즘 산에 가보면, 하나 같이 비싼 등산복들을 갖춰 입고 와요. 그렇게 다 갖춰 입으려면 돈이 얼마인 줄 알아? 산에 패션쇼 하러 오는 건지.”

고가의 등산복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일리가 있다. 대표적인 서민 레포츠 등산에서마저 과소비 풍조가 만연하다니.

골프 패션의 경우는 더 심하다. 일부 골프장에서는 복장에 대한 규범이 엄격해 칼라 없는 셔츠나 청바지를 입고 오면 출입을 거부하기도 한다. 골프패션을 위(모자)에서 아래(신발)까지 고급으로 갖춰 입으려면 수백만원이 들어간다. 골프장이 아무리 고급 사교와 비즈니스의 장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지나치면 눈총을 받게 된다.

스키도 상황은 비슷하다. 스키장에 가보면 값비싼 설원의 패션으로 장관을 이룬다.

고급 스포츠나 서민 스포츠 가릴 것 없이, 요즘 모든 스포츠에서 패션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다. 요가나 댄스, 수영 그리고 동네 휘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할 때도 운동복과 신발, 각종 장비와 액세서리까지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트레이닝복과 신발, 운동장비의 가격은 브랜드와 디자인, 소재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스포츠웨어를 보면 그 사람의 계층을 알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제 스포츠웨어에서 기능은 기본이고, 스타일이 점점 강조되고 있다.

아디다스는 이번 시즌 디자이너 스텔라 맥카트니가 디자인한 ‘댄스 라인’ 스포츠웨어를 선보였다. 댄스 라인은 레이어링(겹쳐입기)을 기본 컨셉으로 클래식한 스타일과 현대적 스포츠가 조화를 이룬다.

그래픽 프린트의 오버 사이즈 티셔츠와 여성스럽고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능한 신발, 워머와 레깅스 등의 액세서리를 활용해 댄스라인을 연출할 수 있게 했다. 나이키 우먼스에서는 체형을 고려한 섹시해 보이는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스포츠웨어의 고정관념도 무너지고 있다. 실크와 광택소재를 사용한 스포츠웨어가 등장하고, 플라스틱을 장식으로 부착한 폴로도 나왔다. 클래식한 느낌의 티셔츠나 앞서 언급했던 여성스럽고 섹시함이 강조된 스포츠웨어가 그러한 예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는 영국, 캐나다, 페루, 러시아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패턴과 소재들을 접목시킨 제품을 선보였다. 영국의 대표적 전통 소재와 패턴인 하운드 투스(Hound Tooth) 패턴과 글렌 체크(glen Check)를 모티브로 만든 트레이닝복은 셜록 홈즈 스타일 재킷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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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웨어가 진화하면서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인기 패션 아이템으로 떠오른 레깅스나 발레슈즈 모두 스포츠웨어가 일으킨 유행이라고 볼 수 있다. 파커를 변형한 재킷이나 스포티한 스타일이 가미된 티셔츠나 파카소재의 원피스, 요가복 스타일의 바지도 마찬가지다.

편안하고 캐주얼한 느낌의 스포츠웨어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이 일상으로 파고든 것이다.

럭셔리 뉴욕 라이프 스타일을 표방하는 패션 브랜드 ‘띠어리맨(theory Men)’은 이번 시즌 피팅감을 강조한 다운 소재 패딩 재킷을 선보였다. 인터패션플래닝 서민정 연구원은 “스포티한 블루종이나 트랙쟈켓, 파카와 같은 아우터를 정장과 함께 매치하기도 하며, 특히 여성복에 있어서는 레깅스의 활용이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스포츠웨어에서 패션이 강조되다 보니 패션과 스포츠의 경계를 나누는 것 자체가 무색할 지경이다.

등산복에서 시작된 스포츠웨어 얘기가 여기까지 흘렀다. 스타일의 첨단을 달리는 스포츠웨어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패션에서 자유로운 공간은 없는 것일까?’ 도심, 시골, 직장, 휴식시간 등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마주치는 패션. 패션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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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