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살기' 야구영화로 흥행홈런 노리다'해가 서쪽에서 뜬다면'등 이은 주특기 소재… 멜로·코믹 섞어 스토리 탄탄

감독은 모두 자신만의 주특기를 갖고 있다. 주특기가 없는 감독은 기획영화의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장선우 감독이 섹스와 정치라는 주제로 승부했다면 이명세는 독보적 스타일로 충무로를 휘저었으며 홍상수는 섹스와 지식인 가면 벗기기로 일가를 이루었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숨막히는 서스펜스와 한 프레임도 가감할 수 없는 완벽한 편집으로 거장의 자리에 올랐고 우디 알렌은 소나기처럼 쏟아내는 대사와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엔드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다음 장면이 어디로 진행 될지 모르는 럭비공을 바라보는 긴장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이들의 필살기는 영화 연출력에 대한 내공과 비례한다. 이것이 결여되면 감독은 자신의 이름으로 내건 간판을 내려야 한다.

김현석 감독은 야구 감독 같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야구 영화를 잘 만드는 영화 감독이다’는 문장을 불편함 없이 쓰게 만든다. 시나리오 작가 시절에도 이은 감독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라는 야구 심판이 주인공인 작품을 집필하였으며 감독 데뷔작도 이라는 야구영화다.

이번에도 그는 전직 야구 선수출신이 주인공으로서 광주일고에 재학 중인 국보급 투수 선동렬을 스카우트하는 영화인 <스카우트>를 연출했다. 김현석의 필살기는 바로 야구다. 야구는 김현석 감독을 충무로의 주목할 만한 감독으로 등극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그의 야구영화는 야구 선수들의 선수 성장기나 우승담을 다루지 않는다. 야구는 배경으로 자리할 뿐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여기서 기존의 스포츠 영화와 김현석의 야구영화가 갈린다. 김현석에게 야구는 영화적 뿌리이지만 일종의 맥거핀처럼 활용될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 꽂히는 대상과 지향하고 싶은 바가 존재한다. 음악가에게는 우연히 들은 베토벤의 음악이 될 수도 있으며 고승은 산사에서 들리는 불경소리에 마음이 끌릴 수도 있다. 끌리는 것에서 일가를 이루는 자가 대가가 된다.

한국 불교미술의 대가인 강우방 선생이 운문사 소나무의 궁륭(穹窿)을 예찬하면서 이와 같은 심정을 표현한 바 있다.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이 궁륭의 소우주 소리를 무겁고도 격정적인 심정으로 청마 유치환처럼 노래하리라.

내가 만일 작곡가라면, 이 웅대하고도 기괴한 세계를 교향곡으로 작곡하리라. 내가 만일 화가라면, 무질서한 가운데 힘찬 생명력의 가지들을 재구성하여 천호짜리 화폭을 완성하리라.” 김현석에게 야구의 역사와 야구인의 에피소드는 카메라에 담아내고 싶은, 소나무가 만든 궁륭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스카우트>에서 그는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것 혹은 가장 잘 할 수 있는 소재인 야구를 선택했다. 그리고 야구라는 배경 앞에 첫사랑과 사랑의 회복이라는 멜로드라마의 서사를 집어넣었고 에피소드와 에피소드는 코미디 장치로 리듬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내 중견 감독으로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스카우트>에는 대중영화 서사의 제 1조 1항인 ‘주인공이 하고자 하는 일’이 존재한다. 주인공 호창(임창정 분)은 한 가지 임무를 갖고 광주에 잠입한다. 그것은 바로 국보급 투수인 광주일고의 선동렬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일이다.

전직 야구선수인 그는 무서운 승부근성으로 스카우트에 올인한다. 하지만 선동렬은 이미 라이벌 대학의 계약서에 싸인하는 일만 남은 상태다. 호창은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선동렬의 부모를 공략하여 역전의 기회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영화의 서사가 선동렬의 스카우트에 머물면 대중성이 허약하다는 것을 감독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선동렬 스카우트 쟁탈전이라는 단순한 기획영화에서 벗어나는 순간 첫사랑인 세영과 호창의 연애의 길이 열린다.

김현석의 진가가 여기서 발휘된다. 이 영화가 단지 선동렬의 스카우트 성공기에 포커스가 맞추어졌다면 싱거운 상업영화에 대한 관객의 질타성 발언들이 벌떼처럼 몰려올 것이라는 사실을 감독은 이미 간파했다.

이 지점에서 선동렬 스카우트 여부는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한 속임수로 후퇴하고 첫사랑과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는 서사로 무게중심이 이동한다. <스카우트>는 제목이 스카우트로 붙여졌지만 선동렬 스카우트 성공담, 실패담이 아니라 전직 야구선수의 첫사랑 재회성공담으로 돌변한다.

호창은 첫사랑 세영(엄지원 분)을 광주에서 만난다. 이 두 남녀의 사랑 회복에 대해 관객의 관심이 증폭된다. 관객은 주인공이 하고자 하는 일인 선동렬 스카우트 성사에 사소한 관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궁금증은 ‘그녀는 왜 갑자기 호창을 떠났으며, 호창은 왜 야구복을 벗게 되었는가’라는 점에 집중된다.

결국 그녀와 호창은 과거의 오해를 해소하고 관계를 복원한다. 마지막 엔딩 씬이 나오기 전까지 관객의 궁금증을 다 해소해 주며 관객들이 편안하게 극장문을 나서게 한다.

김현석의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은 두 가지 플롯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엮어서 관객의 시선을 끝까지 붙잡아둔다는 점에서 발휘된다. 서사적 완결성은 김현석 감독이 보여준 재능의 일부일 뿐 그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한 씬 한 씬에서 보여주는 희극장면을 통해 입증된다.

그는 한 장면이 여러 개의 컷으로 이루어지면 그 컷들의 리듬으로 희로애락을 만들어낸다는 영화문법과 언어에 노련하다. 김현석은 야구라는 뿌리를 토대로 하여 멜로와 코미디라는 장르적 줄기를 맘껏 뻗어나가며 자신의 영화세계를 방사형으로 펼치고 있다.

첫 작품 이 야구와 코미디의 결합을 실험했다면, <스카우트>에서는 야구와 장르라는 영화 공식이 국보급 투수와 국민 포수의 잘 맞는 호흡처럼 빛을 발한다.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가 어떻게 멜로와 코미디와 결합하여 대중성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등생이 작성한 답안처럼 화답한다. 박스 오피스 성적은 예상할 수 없지만 대중영화로서 완성도는 A학점 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족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광주 민중항쟁이라는 시대 배경이다. 장선우에게 광주민중항쟁은 강간당한 기분이었다면 이창동에게 광주민중항쟁은 자신을 파멸시키는 상처의 근원으로 자리했으며 김현석에게 광주민중항쟁은 연애와 스카우트를 방해한 불편한 역사에 불과하다.

광주의 기억은 상처와 공포라는 고통의 강박에서 벗어나 첫사랑의 구출이라는 유희의 기억으로 스펙트럼이 넓어져갔다. 영화는 현실보다 현실의 너머에 시선을 던지는 예술이다. 이 명제에 동의하는 자는 많지만 작품을 통해 입증한 사례는 드물다. <스카우트>는 이를 입증해주는 한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 문학산 (본명 문관규)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현 세종대 강사, 영등위 영화등급 소위원, 전주영화제 한국단편의 선택 비평가 위원, 한국영화학회 이사. 저서 <10인의 한국영화 감독>, <예술영화는 없다><한국 단편영화의 이해>의 저자. 영화 <타임캡슐 : 서울 2006 가을>, <유학, 결혼 그러므로 섹스>의 연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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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