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학생 "학비는 내손으로"… 알바·저리융자 얻으러 '동분서주'

요즘 미국에서 한국에 국제전화하는 것은 큰 부담이 안 된다. 한인 마트에 가서 10달러짜리 전화카드 하나 사면 무려 다섯 시간 이상을 통화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십여 년 전 내가 처음 유학 왔을 때는 이런 싼 카드가 없었다.

그 시절에는 국제 전화비용이 무서워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도 제대로 못했다. 하지만 어쩌다 큰 맘 먹고 전화기를 잡는 날이 며칠 있을라치면 그 달은 어김없이 100달러, 심할 땐 200달러가 넘는 전화 고지서를 받는 큰 사고를 치곤 했다.

재회의 감격에 겨워 (비록 전화상으로 이지만), 게다가 거의 완벽하게 ‘잘하는’ 내 나라 말로 신나게 떠들 때는 전화비용이고 뭐고 하찮게 느껴지기 일쑤지만, 막상 고지서를 받았을 때의 내 발등을 내가 찍고 싶은 후회막급의 감정이란 당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국제전화 비용이 싸진 덕에 한국에 전화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직계가족 아닌 사람에게도, 비 응급 상황 시에도, 전화를 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건 벌써 몇 년 전부터의 일이지 싶다.

재작년 여름 어느 날 한국에 있는 몇몇 안 되는 나의 각별한 친구 중 하나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 저런 시시콜콜한 근황을 주고받다가 “나 식당에서 서빙(serving) 아르바이트 해” 라고 아무 생각 없이 말했는데, 친구가 막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영문을 몰라 당황하고 황당해 하는 나에게 친구 신랑도 말을 보탠다.

비행기 표 사 보낼 테니 힘들면 이제 그만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이 난감한 돌발 상황을 어찌 어찌 수습은 했지만, 나도 충격을 적지 않게 받았다. 내가 식당일 한다는데 왜 그녀가 울어야 했을까?

물론 웨이트레스의 일이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신체적으로 웬만한 막노동은 저리 가라다. 접시를 들고 내리는 일도 힘들지만, 일하는 시간 내내, 거의 쉴 틈 없이 서서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다리뼈가 부러지는 듯 한 아픔에 눈물이 찔끔 나올 지경이다.

나와 같이 학교 도서실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 투잡’아르바이트 뛰는 것은 흔한 일이다.
나와 같이 학교 도서실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 투잡'아르바이트 뛰는 것은 흔한 일이다.

십여 년 경력의 베테랑 웨이트레스 언니들이 들으시면 나보고 엄살이 좀 심한 거 아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나 자신은 두 달도 못 채우고 그만 둔 서빙 아르바이트 후유증으로-다리뼈와 손가락 관절 통증-그 후 거의 한 달 반 이상을 시달려야 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글루코사민 먹고 있다).

그녀는 왜 울었을까? 이런 궁상 떠는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는데.

사실 친구가 들으면 울 만한 일도 있었다. 한창 다른 사람 밥 먹을 시간에 일하는 게 이 직업인지라, 내 밥 먹을 때를 놓치고 일할 때가 비일 비재 했다. 나는 배고픈 것을 못 참는다. 밥 먹을 시간에서 십 분만 지나도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앞이 아득해지기 시작하면, 나는 뭐라도 먹어야만 한다, 그것이 비록 손님상에서 나오는 음식일망정.

손님이 남긴, 비교적 손 안탄 깨끗한 음식을, 처음엔 다른 사람 눈치도 좀 보다가, 그리고 나중엔 뻔뻔스럽게 내놓고, 먹는 내 모습을 내 친구가 봤으면 그건 아마 그녀에겐 울만한 일 일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이 얘기도 역시 하지 않았다.

내 친구가 운 이유를 놓고 이리 저리 궁리한 결과 내린 결론은 첫째, 그녀는 ‘직업에 귀천 있는 나라’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양반, 상놈의 엄격한 구별은 없어졌지만 현대판 양반, 상놈 즉 화이트 칼라(white color) 블루 칼라 (blue color)의 구별이 암암리 존재하는 나라에서, 블루칼라 직업에조차 낄 수 없는 웨이트레스라는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떤 것일지는 알만한 일이다.

그 ‘천한’ 일을 하는 내가 얼마나 불쌍하고 한심스러웠겠는가? 만일 내가 신문사의 시사주간지(주간한국)에 글 쓰는 아르바이트 한다고 했어도 그 친구가 울었을까? 한 가지 가능한, 더욱 유력한 추론은, 내 친구는, 아마도 많은 다른 한국 사람들처럼, 스스로 자기 앞길을 개척해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아직 몰라서 울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곳 미국에서는 대학생이, 심지어는 고등학생들도, 자기 학비를 자기가 벌어서 해결하는 일이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현재 우리 학교 도서실에서 나와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미국인 동료 크리스털은 자기가 대학교 다니는 동안 항상 투 잡 (two job)을 뛰곤 했다 한다.

이곳 고등학생들도 많이 하는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학교 다니는 동안 공부에만 전념하고 싶은 다른 많은 미국의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들은, 정부로부터 빚을 얻어 학교를 다닌다. 이 빚은 학교를 다니는 한은 안 갚아도 되는, 그리고 졸업 후엔 아주 싼 이자로 천천히 갚아도 되는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아주 좋은 조건의 융자이다.

적어도 5만 달러 이상의 정부 빚을 갖고 있는 미국 대학원생들이 내가 알기로도 꽤 된다. 특히 이곳 의대생들의 공부 빚은 그 규모면에서 타 분야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워낙 ‘돈 되는’ 직업인지라 졸업 후 몇 년 만에 빚을 모두 청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들었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크게 두 종류로 분류된다 고학 형, 귀족 형 또는 빈대 형.

학교마다 지역마다 상황이 많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한인 유학생 중 맨바닥에 박치기하는 순수 고학 형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고, 부모님들로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 받는 귀족 형이 반 이상, 그리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예를 들면 식당, 세탁소, 매니큐어 가게 등에서 일하는 부인의 덕으로, 공부하는 빈대 형(죄송합니다!) 도 꽤 있는 듯하다.

긍정적인 것은 꼭 필요에 몰려서가 아닌데도 자청하여 고학 형 유학생의 삶으로 조금씩 방향전환을 하는 한인 유학생들이 근래 들어 꽤 눈에 많이 뛴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다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아르바이트 하느라 본업(공부)은 뒷전이 되 버린 예도 가끔은 보인다. 이렇게 ‘대강’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가서 강단에 선다면 그것도 아찔한 일일 것이다. 물론 가짜학위보다야 백 배 천 배 가치가 있겠지만 말이다. 또. 공부에만 전념하여 전액 장학금을 받는다면 그것이 더 타산에 맞는 일이며 나아가는 애국하는 길 일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주변 유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충고 중의 하나도 바로 “푼돈에 목숨 걸지 말고 공부하세요!” 이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이 결코 수지 타산만이 전부가 아니지 않는가.

자기 자신의 앞길을 자기가 개척해 나가는 뿌듯함, 이러한 자긍심이 없었다면,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을 부끄러워했다면, 아마 우연이라도 내 친구에게 웨이트레스 일에 대한 얘기는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 유학 오거나 이민 온 한국 분들, 돈이 있으면 있는데도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이 기회를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삶을 경험하는 귀한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야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자기 힘으로 만들어가는 삶의 가치를 아직 모르거나, 또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자 하는 우리 곁의 누군가를 위해 나와 같이 울자꾸나!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