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에서 온 남자, 난자에서 온 여자'/ 조 쿼크 지음 / 김경숙 옮김 / 해냄 발행 / 1만2,000원종족보존 관점에서 사회현상 파헤친 소설가의 도발적인 연구

오래 전, ‘이성적 남자’와 ‘감정에 휘둘리는 여성’ 간의 차이와 차별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됐다. 열정적인 페미니스트 전사들은 이 같은 통념을 비틀었다.

이들은 ‘어떻게 태어나느냐’보다 ‘어떻게 교육 받고 키워지느냐’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전학에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남녀의 구분은 물론 인종 등에 따른 인간 개개인의 특성이 모두 유전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하는 결정론적 경향이 ‘과학’의 이름으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처럼 ‘진화’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학문들이 그런 경향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정자에서 온 남자, 난자에서 온 여자>도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밝히는 책이다. 저자 존 쿼크는 생물학자도, 심리학자도 아닌 ‘생활고에 시달리는 소설가’이지만 7년 동안 진화생물학에 심취해 수많은 책을 읽고 직접 연구자들과 토론도 했으며 실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임상 실험(?)’도 해 봤다고 한다.

즉 아마추어가 쓴 진화생물학 책인 셈인데, 그 때문인지 내용이 참 도발적이다. 3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모든 건 종족보존 본능에 의한 것”이다. 여기저기 정자를 퍼뜨리고 다니고 싶어하는 남자의 바람기도, 배우자 감을 고를 때 (아이를 장기간 키울 수 있는 토대가 되는) 남자의 경제력이나 지위를 고려하는 여자의 계산도 모두 종족 번식 본능 때문이다.

남성의 고환도 아내의 애인이 아니라 자신의 씨로 자식을 만들기 위해 현재와 같은 크기로 진화한 것이다. 난교가 일상적인 침팬지 수컷의 고환은 엄청나게 큰 반면 고릴라의 경우 우두머리 고릴라 수컷의 암컷을 다른 고릴라가 차지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환이 작다고 한다.

남성의 고환이나 페니스의 크기가 현재 상태인 이유, 95%가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조류의 세계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새끼가 암컷의 ‘애인’의 자식이라는 통계 등은 확실히 재미있다.

하지만 다음 문장에서처럼 모든 것을 본능에 의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저자의 자세는 ‘남자의 바람기나 성매매 모두 다 본능에 의한 것이니 고칠 생각 말고 받아들여라’고 말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성들이여, 남자들이 익명의 상대(매춘부 등)와 아무런 감정도 없이 성관계를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정자가 별 가치가 없기 때문임을 잊지 마라. 어머니인 자연이 여성들에게 섹스와 관련해서 마음에서 우러난 깊은 감정을 갖게 한 것은 당신들의 난자가 매우 귀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감정은 그 귀한 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남성의 감정은 공짜 정자를 널리 나눠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분명 이 책은 성별에 따른 차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력과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진화OO학’들의 문제는 이 같은 차이를 ‘자연적인 것’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를 메우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차이에 따른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쓰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회진화론자들에 의해 제국주의 유럽인들의 아프리카와 아시아 점령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전 총장이 “여성은 선천적으로 수학을 못 한다” 등 성차별적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낙마한 것이나, 얼마 전 노벨상 수상자인 제임스 왓슨 박사가 ‘흑인의 지능이 백인의 것과 같다는 전제 하에 사회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비판하면서 “인종간 지능을 가진 유전자가 10년 내 발견될 것”이라고 말했다가 40년째 근무해 온 연구소에서 쫓겨난 사례도 최근 유행하는 ‘진화OO학’의 위험성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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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