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창고 정리법'베르나르 쿠루아질 책임 편집 / 이세진 옮김 / 사이언스북스 발행 / 2만5,000원

최근 수년 동안 과학계에서 가장 발전한 분야를 들라 하면 무엇보다 유전학과 뇌신경과학 분야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국제부 기자인 필자는 하루에 한두 번 정도는 최신 연구 성과에 대한 외신을 접하는데, 그 중 거의 절반 가까이가 이 두 분야와 관계된 내용일 정도다.

<기억창고 정리법>은 오랫동안 신비에 싸여있던 뇌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쓰여진 ‘기억의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베르나르 크루아질의 책임 편집 하에 의사, 신경 과학자, 인지 심리학자 등 20여 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이 책은 기억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기억이 저장됐다가 다시 불러일으켜지는지, 기억이 어떤 원인으로 사라지며 기억력을 증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기억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나열하고 있다.

기억은 정보를 습득하고(학습), 저장하고(저장), 필요할 때 끄집어내는(재생) 3단계로 구성된다.

이 각각의 단계에서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면 건망증을 줄이고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그 방법 중에는 물론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들도 많다. 일례로 물건의 위치에 대해 기억하고 싶을 때는 비슷한 물건이 있는 곳에 놓는다든지, 리모컨은 반드시 TV 옆에 놓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처음부터 ‘잘 기억할 만한 곳에 놓으라’는 식이다. 하지만 꽤 유용한 조언도 있다. 분명 만났던 사람인데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 경우를 누구나 겪은 적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앞으로 기억해야 할 사람을 만난다면 우선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사물을 생각해 내고 얼굴의 주요 특징과 이 개념을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이제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면 이 심리적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된다는 것.

이는 단순한 정보에 시각적 이미지나 심리적 이미지를 입혔을 때 훨씬 더 잘 기억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응용한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이 같은 이론을 실제로 적용해 보면서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직접 개발한 기억력 테스트를 별책으로 분리 가능한 부록으로 수록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 책은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각종 생활 습관과 음식들, 약품들을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주변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말고, 다양한 취미, 레저 활동을 즐기며 숙면을 취하는 것은 기억력에 도움되는 습관이다.

염분을 적게 섭취하고, 채소나 과일, 등푸른 생선을 즐겨 먹는 것이 좋으며 곡물이나 감자, 그리고 오메가3를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집어들 때만 해도 이처럼 긴 서평을 쓸 생각은 아니었다.

솔직히 하루에도 여러 번, 방금 하려고 했던 일이 무엇인지 잊어버리는 건망증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실용적 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짧게는 한 줄, 길게는 열 줄 이내로 요약 가능한 내용을 그럴듯한 글재주로 엮어 낸 것이 대부분인 요즘의 실용서에 비해 상당히 알차고 꼼꼼하게 만들어진 책이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 지나고 연말 모임 등으로 출판계에서는 비수기라 할 수 있는 겨울이 왔다. 게다가 국민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대선과 삼성 비자금 폭로에 쏠려 있다. 그래서일까.

전체적으로 발행되는 책 수도 줄었을 뿐 아니라 자신 있게 소개할 만한 책들이 매우 드문 요즘이다. 하지만 항상 무거운 책, 화제의 책만 읽을 필요가 있을까. 올 겨울은 이렇게 정성껏 만든 실용서를 통해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며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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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