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명동거리를 나가 보았다. 구세군 자선남비가 종을 치며 발길을, 눈길을 잡는다. 한 어린아이가 고사리같은 손을 넣어 보태는 모습이 예뻤다.

때묻지 않은 동심, 어떤 일을 대하는 초심은 모두 여리고 곱고 아름다운데, 왜 세월은 사람은 회색빛으로 만드는 것일까. 고사리는 그 순이 아이가 보드랍고 조막만한 손을 움켜 쥐듯 오글오글 접혀있다가 쑥 대를 올리고 햇살을 받으며 잎새가 펼쳐진다. 그 모습은 푸르고 싱그럽고 균형 있으며 수려한데 말이다.

씨앗이 아닌 포자로 번식하는 고사리집안 식구들을 크게 양치식물(羊齒植物)이라 부른다. 고사리류 잎이 잘라져 양쪽으로 펼쳐진 모습, 또는 가느다란 잎에 털이 돋아난 모습이 양의 이와 같아 붙인 표현이라는데 양을 자세히 볼 기회가 없었으니 ….

지난 5년간 고사리를 포함한 양치식물을 연구하는 과제를 하다 올해 마쳤으니 무엇이든 고사리와 연관을 지어 생각하는 습관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듯 하다.

고사리는 우리나라에 있다고 알려진 300종류에 가까운 양치식물의 하나이다. 나물이나 비빔밥, 육개장에 들어가는 고사리나물은 누구나 잘 알고, 산에서 봄이 되어 순을 뜯을 즈음의 고사리를 아는 사람도 상당수 되지만 막상 잎이 다 펼쳐지고 크게 자란 고사리를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다.

고사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북반구의 온대지방에서 한대지방에까지 걸쳐 널리 분포한다. 많은 양치식물들이 그늘진 곳을 좋아하지만, 고사리는 산과 들의 양지바른 곳을 좋아한다.

일단 숲이 우거지면 고사리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흔히 말하기를 산불이 살짝 나고 지나간 야산에 가면 이듬해엔 고사리가 지천이라고 한다. 웬만한 환경엔 잘 버티지만 오염이 심한 곳에서 고사리를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순은 그리 작고 보드랍지만 키는 제대로 크면 잎 전체의 길이만 1m에 달하기도 한다. 연필만한 굵은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줄기를 내놓으니 한자리 이곳 저곳에서 올라온 잎들을 혹은 순들을 만날 수 있다. 크게 보면 긴삼각형의 잎은 깃털모양으로 갈라지고 또 갈라지고 또 갈라져 전체적으로 3번 갈라 진다. 맨 아래쪽의 잎조각이 가장 커서 전체의 3분의2를 차지한다.

많은 양치식물의 포자들이 동그랗게 혹은 갈고리모양으로 잎매에 달리는데 고사리는 밋밋하고 약간 뒤로 말리는 잎 가장자리에 이어 달린다.

나물 말고 뿌리줄기에서 녹말을 채취하기도 하고 어린 순은 약으로도 쓴다. 내장에 있는 열독을 풀어준다고 하고 기운을 좋게 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 한다. 다만 오래 먹으면 부작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긴 이러한 약효라는 것이 애매하여 항암성분이 있다는 기록도 있고, 발암성분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나 같은 식물학자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산에서 고사리 만나기가 점차 쉽지 않으니 요즈음엔 밭에 심어 키우기도 한다. 원래 포자로 번식하는 것이니 이러한 포자번식 노하우는 쉽지 않은 것이어서 보통은 땅속줄기를 산에서 옮겨야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날씨가 많이 춥다. 벌써 야들야들 보드라운 새순이 올라오는 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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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