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동아시아 삼국전쟁'자국 이익위해 제멋대로 미화된 임진왜란의 단면 비판적 고찰정두희·이경순 엮음 / 휴머니스트 발행 / 2만8,000원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표현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과거의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재구성해내는 역사가의 역할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이 말은 ‘역사가의 해석을 배제한 순수하게 객관적 사실이란 존재하기 어렵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임진왜란은 이 같은 명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역사적 사건 중 하나다. 임진왜란은 한중일 삼국의 최고 권력 수반이 모두 직접 개입한, 무력을 동원한 최초의 분쟁으로, 16세기 말 동아시아에 심대한 충격을 가했다. 전쟁 때문에 멸망으로 치닫지는 않았지만 거의 전국이 전쟁터가 된 조선은 회복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 전쟁으로 여력이 소진된 명나라는 이후 여진족이 흥기하자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 일본에서는 이 전쟁을 수습하지도 못하고 히데요시가 죽음으로써 그의 꿈도 사라졌으며, 뒤이어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섰다.

사실상 ‘승자’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전쟁을 한중일 삼국은 순전히 자국의 입장에서 미화했다.

한국은 이순신을 영웅화하고 논개와 의병장의 활약을 만들어내며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로 임진왜란을 이용했다. 제국주의 시대 일본은 이 전쟁을 대륙 침략의 선구적 업적으로 미화하고 히데요시를 역시 영웅으로 추앙했다.

중국에서는 조선을 도와 일본을 패퇴시켰다고 하여, 이 전쟁을 대국주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세 나라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자국의 ‘국가사(national history)’에 갇혀 있는 전쟁의 내러티브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특히 ‘최초의 동아시아 삼국전쟁’이라는 좀더 큰 틀에서 임진왜란을 연구하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국내외 역사학자 13명이 가졌던 국제 학술회의에서 발표됐던 논문을 모아 엮은 것이다.

다만 논문을 모아 엮은 것인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서술을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한국에서 본 관점보다 일본과 중국에서 본 관점은 분량도 적거니와 해당 국가 역사가들이 아닌 서방 역사가들에 의해 쓰여졌다는 점은 아쉽다.

한국 학자들의 발표 중에는 논개와 의병장 곽재우의 영웅화 과정을 파헤친 연구가 재미있다. 가회고문서연구소장 하영휘 박사는 곽재우가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고 각종 문헌에 기록된 화왕산성 전투는 조선후기 당쟁이라는 역사가 조작해낸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영남 남인들이 임진왜란 의병장인 조헌에게 뿌리를 두는 노론 계열에 대항하기 위해 실상과는 전혀 동떨어지게 전투 상황을 조작하고, 이를 통해 ‘영웅 곽재우’를 탄생시켰다는 설명이다.

논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논개의 사당을 짓고 ‘생가’까지 만드는 등 논개의 영웅화에 열을 올렸지만 정지영 이대 교수는 이를 신화로 규정한다.

논개의 죽음은 임진왜란 후 진주지역에 떠돌던 미확인 소문에 불과했지만 진주에 들른 유몽인이 <어우야담>에 논개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신화가 만들어진다.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 민족주의가 고양되는 식민지 시대에 이르러 논개는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의 작품을 통해 잃어버린 조선의 상징으로 탄생한다. 특히 한국전쟁 후 국민적 희생과 동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던 때, 논개는 나라에 대한 국민들의 맹목적 충성심과 희생정신을 이끌어내기 위해 희생적 여성상으로 변화한다.

네덜란드 라이덴대의 W J 보트 교수는 임진왜란 후 일본의 지식인 호리 교안이 쓴 <조선정벌기>를 통해 동시대 일본인이 히데요시와 임진왜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검토했다.

명의 참전 이유와 새로운 패자 누르하치의 시각에서 본 전쟁, 조선 고지도 속에 담긴 일본에 대한 이미지 등의 연구도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임진왜란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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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