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신대륙을 반견하듯 인체의 신비 탐험

문득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백색 공간에서/ 나를 불러줄 생물은 아무것도 없다 - 김용호의 글 <나는 몸이다>에서.

우리가 우리의 몸이 가진 메시지를 제대로 돌아본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작가는 '생물‘로서의 인간의 몸을 굳이 누드를 통해 조명한 걸까.

국내에서 손꼽히는 유명패션사진작가 김용호는 인체가 가진 선과 양감, 실루엣, 생물적 박동감, 뭐라 명명하기도 어려운 인체 표면의 어떤 에너지를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명료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인간의 몸을 마치 어떠한 변형도 자유자재로 가능한 오브제처럼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김용호의 <몸> 사진전이 대림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누드 사진이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작가로선 자칫 유쾌하지 못한 색깔의 관심을 받을 우려도 있지만, 작품을 들여다보노라면 굳이 누드를 선택한 작가의 의도가 와 닿는다. 작가에게는 그야말로 문명으로부터 훼손되지 않은 태초의 신대륙을 탐험하듯 신선하고도 과감한 이미지적 접근이다.

이번 전시회는 모두 5부의 소주제로 나뉘어 관객들을 맞고 있다. 1부 신대륙의 자연과 생물, 2부 채집된 몸, 3부 신대륙용 여행가방-상품화 된 몸, 4부 소녀 신대륙을 가다, 그리고 5부 몸 등이다.

작품 상당수는 (인체의) 등의 표정과 자세를 다루고 있다. ‘등은 달의 뒷면을 보는 것과 같다’는 해설에 전적으로 동의할 만 하다. 피사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알 필요도 없다.

등의 소유자 자신은 자신이 가진 몸의 이면을 보지 못하면서,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것에 대한 명제로부터 작가의 의식이 출발한다. 이 색다른 탐험 내용과 여정을 이 점에서 다분히 이해할 만하다. 작가 김용호는 관객들에게 사실상 우리 곁의 우주를, 항상 보면서도 스스로 놓치고 있던 우리 안의 ‘소행성’을 명확히 짚고 있다. 김용호의 색깔이다.

2부 <채집된 몸>에서는 작가의 독특한 뷰파인더가 드러난다. 지구의 지배자가 사람이 아니라 우리보다 우수한 어떤 종족이 우리를 지배했을 때 인간 역시 표본실의 박제와도 같은 처지가 된다면 어떨까?

이 ‘창작자’다운 가설을 전제로 한 작품들이 나와 있다. 액자식 채집방식을 통해 박제된 생물체로서의 고립과 고독, 소통단절을 조용히 암시한다.

<신대륙용 여행가방>은 산업화와 상업성에 뒤섞여 상품화 된 인간의 몸을 표현하고 있다. 끔찍한 가정이지만, 우리보다 우월한 종의 몸이 존재했더라면 우리의 표피 또는 가죽 또한 채집화될 수 있다는 냉소가 섞여있다.

나는 이번 몸展을 위해 표본실을 구성했다. 1년 넘게 배치, 의도하며 구성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당신이 채집되어 있다. 흑백과 컬러 사진, 채집과 표본을 비롯해 동시대를 호흡하는 인체, 몸을 볼 수 있다. 사람의 자연, 몸의 능선을 볼 수 있다. - 작가의 말.

일상적인, 너무나 일상적인 대상 안에서 신대륙을 발견한 작가의 희열은 얼마나 컸을까. 이번 전시회에서는 배우 이범수, 오광록, 장두이 등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도 얼핏 비친다. 하지만 ‘연예인 누드 사진’라는 선정적인 호기심 때문에 몰려드는 관객만큼은 작가는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또는 사양. 1월27일까지 볼 수 있다. (02) 720- 0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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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