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과학의 나라에서 '문명의 이기'에 관심없는 수많은 사람들

■ '기계치'의 컴맹극복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

신문사의 담당 편집자가 기왕 쓰는 글에 사진도 몇 장씩을 찍어 보면 어떻겠냐 하시기에 그러자고 덥석 대답을 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 만져보는 디지털 카메라를 빌려서, 사용법을 배우고, 사진을 찍어, 내 컴퓨터에 그 사진을 옮겨 담고, 다시 그것을 플래시 카드에 옮겨 담는 무지 복잡한 과정을 ‘내 손으로’ 직접 마친 후, 그 사진을 전송하러 학교 컴퓨터실로 갔을 때의 일이다. 웃지 마시라.

한국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무슨 큰일이나 해 낸 것처럼 요란 법석 떤다고. 이실직고하면 나는 ‘기계치’이다. 기계에 관한 절대적인 감각이 없는 사람. ‘음치’ ‘길치’ 뭐 이런 것처럼 말이다.

디지털 카메라라는 매력적인 장난감도, 이 기계치 작가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었고, 아마 공식적인 일과 관련된 압박이 없었다면 내가 평생 만져보지 않았을 물건 목록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뿌듯하고 “나 잘났다” 는 기쁜 성취감을 만끽하며 차장님이 이메일로 적어 보내신 설명을 따라 신문사의 기사 전송 웹페이지까진 잘 들어갔는데, (헉!) 아니 차장님 무슨 지침을 주다 마셨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나종미의 미국 문화 읽기 폴더에 올려주세요” 라는 말밖에 없네. 고민 고민하면서 웹 페이지 이용 안내도 읽어보고 이 메뉴 저 메뉴 들락 달락 해봐도, 어디에도 사진을 ‘첨부’ 할 만한 곳이 없는 거다.

“아니 차장님도, 자세히 하나씩 설명을 해주시면 어디 덧나나...(투덜투덜)...” 삼십분 오십분이 지나 거의 전송을 포기하려 할 즈음 마침 옆 동네 공학박사님이 지나 가기에 반갑게 붙들고 도움을 청하자, 그분 왈 “아 그거 ‘올리기’ 누르시면 되요.” 아뿔싸 “올려주세요” 라는 말이 ‘올리기’ 버튼 누르라는 말이었구나!

컴맹 수준을 겨우 벗어난 나에게 ‘올리기’ 라는 그 심오한 말을 이해하는 데는 엄청난 인식 전환의 혁명이 필요했다. 사실 나의 컴맹 극복 노력의 역사는 길다. 도스 (MS-Dos)가 처음 나온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컴퓨터 버전이 나올 때마다 학원가서 재교육을 받은 것만 내 기억에도 세 번이 넘는다.

그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최첨단 현대기계 과학 문명의 이기 중 하나인 컴퓨터를 나는 단순 필기-편집기구로 사용하고 있다.

“누나는 차라리 타자기나 사서 쓰지 그래” 하는 우리 남동생의 뼈있는 농담에도 꿋꿋하게, ‘페이퍼 전용’ 내 컴퓨터로는 게임이나 인터넷 같은 것 절대 안 한다. 고장이라도 나면, 그리고 혹, 만에 하나, 치료가 불가능한 벌레(무지한 내가 바이러스 와 버그를 싸잡아 지칭하는 말)라도 들어오면, 기계치인 나로서는 영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다투는 학기 페이퍼라도 있을 때엔, 아침에 컴퓨터가 고장 나면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바로 그날 저녁에 새 컴퓨터를 살 수밖에 없는 기계치 유학생의 애로, 지척에 무료 고급 컴퓨터 인력이 널려있는 IT (Information Technology) 강국에 사시는 나의 동포님들은 아마 이해하시기 힘드실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 제조 회사 수리 센터에 컴퓨터를 보낼 때- 보통 다른 주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보낸 컴퓨터 돌려 받기까지 몇 주가 걸릴지 몇 달이 걸릴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

그래서 많은 미국 사람들이 컴퓨터 구입 시, 해당 소매점에서 수리에 관한 보험을 사는데 이 비용이 또한 만만치 않다 (대략 200~300 달러 수준). 그런데 이곳 미국엔 나랑 막상막하인 기계치 미국인들 꽤 많은 것 같다.

도서관 복사기를 이용하는 할머니.

■ TV 안 보고 어떻게 살까? 상상불가

내가 학교 도서실 안내 데스크에서 일한 지 얼추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안내 책상에 우아하게 앉아 공부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우리학교 인기 넘버 원 아르바이트 자리이다.

나도 두 번 인터뷰 떨어지고 2 년을 기다려서 겨우 들어왔다. 이 일도 아주 놀고먹는 일은 아니어서 하는 일이 꽤 있는데, 나의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는 책 빌릴 때 도움이 필요한 도서실 이용자들을 돕는 것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미국인 이용자들이-주로 나이가 좀 있으신-학교 컴퓨터로 도서실 책 목록모음에 들어가 일련번호 찾는, 그림보고 클릭 두 세 번이면 해결 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일에 도움을 청하시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입력 버튼 하나 누르면 되는 복사기 사용도 도움을 필요로 하시고.

귀찮으냐고요? 천만에 말씀! 이런 분들과의 만남이 이 기계치 저자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작동단추 누르는 수준의 일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신난 김에 안에 종이가 걸려 복사기가 작동중지 된 것을 얼떨결에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으로 고쳐준 적도 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언젠가 필라델피아 산중 도로를 차를 타고 지나갈 때, 검은 옷을 입고,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타고 지나가는 아미쉬(Amish) 사람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이 사람들은 문명의 이기 사용을 거부하며, 심지어는 전기, 전화, 텔레비전도 없이- TV 안보고 어떻게 살까 상상이 잘 안 간다― 의도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아간다고 들었다. 내가 아는 교수님들 중 이 아미쉬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안티 기계문명인인 분들이 몇 있다.

나처럼 컴퓨터를 타자기로 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컴퓨터도 없이 타자기나 손을 이용하여 강의 원고나 책을 쓰시는 분들이다. 컴퓨터를 살 돈이 없어서도, 그 기계를 다룰 지능이 모자라서도 분명 아닐 텐데 왜 그러실까? 기회가 되면 한번 여쭤봐야겠다.

문명의 이기가 몰려있는 미국 대형 전자제품 매장인 베스트바이.

■ 몇년전 휴대폰 가진 아이, 갱단으로 오해받아

우주선을 쏘아 올려 달나라엔 토끼도 하얀 쪽배도 없다는 것을 가장 먼저 증명한 나라 미국이 최첨단 과학 기술 문명의 나라라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비록 현재로선 백만 또는 억만 장자들에게나 해당하는 일이겠지만, 이 나라에서는 상업적인 우주 투어도 이미 시작 되었다. ‘Best Buy’ 등과 같은 전자 상품 점에 즐비하게 진열돼 있는 온갖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전자 제품들은 또 다른 예 일 터이고.

미국 TV 드라마들이 그려내는 첨단 과학의 나라 미국에 관한 환상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면, 미국의 수사 드라마에서 소위 미제 사건(cold cases) 해결의 일등 공신은 첨단 과학수사 공법 그 자체이다. 직감과 노련함을 겸비한 ‘한’ 성질 하는 헌신적인 수사관들이 억지 춘향식 우연까지 겹쳐 주로 사건을 해결하는 한국의 ‘수사반장’ 식 드라마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최첨단 과학의 나라 미국에 사는 것과 그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것은 별개의 일인 듯하다.

물론 닌텐도인지 뭔지 하는 최첨단 게임기, 또는 최신 아이팟(i-Pod) 전화기라도 발매되는 날이면, 가게 앞에서 며칠씩 날밤을 세워가며 그것들을 손에 넣으려 목을 매는 미국인들도 있긴 있다.

이 중엔 상품의 희소성에 근거한 시세차익을 노리고 나온 계산 빠른 사람들도 꾀 있는 줄로 알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미국인들 이런 첨단 기기에 대해 비교적 덤덤하다. 새 버전 기계가 나왔다고 우르르 달려가 사는 일 여기서는 거의 없다. 학

교 동료 수잔 은 거의 무기로 써도 될 만한, 내가 초등학교 적 들고 다니던 필통 크기만 한 초창기 버전 휴대폰을 아직도 들고 다닌다. 한국에서 휴대폰은 전화가 아닌 ‘시계’로 쓸망정 아이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거의 누구나 가지고 다니는 필수 품목의 하나가 되었다.

한데 여기 내 주변에는 휴대폰 없이도, 아니 없어서 더 잘사는 미국인들도 많다. 가족단위 계약으로 아이들 전용 전화 끼워 팔기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세일하는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겠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국 아이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다닌다면 마약을 파는 갱단의 말단 멤버쯤으로 오인 받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컴퓨터, 휴대폰, 아이팟 등, 첨단 과학 문명의 이기를 소유 향유하는 일에 별 큰 관심이 없는 듯한, 심지어는 거부하는 듯한, 내가 아는 적지 않은 미국인들.

한번 산 물건은 고치고 또 고쳐가며 대를 물려 써야 한다고 믿는 듯 한 이들의 검소한 삶의 태도 때문일까? 아니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마치 신기루와 같이,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앞서가는 기계 기술 문명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의 표시일까? 기계치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내면 깊숙한 속에 있는 것은 사실은 ‘기계 문명 부적응자’ 가 아니라 ‘기계 문명 반항자’가 아닐는지.

새로 산 디지털 카메라 기능을 익히느라 어제 새벽 2시까지 매뉴얼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 부적응자보다는 차라리 반항자가 멋져 보이는 것 같은데 뭘 알아야 반항을 해도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 정말 ‘짱’이다. 카메라가 아니라 작은 컴퓨터다. 단추 누르는 것 외엔 별로 할 줄 아는 거라곤 없는 소위 ‘똑딱이’ 사진가인 내가 찍은 사진들, 꽤 괜찮아 보이지 않나요?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