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주식회사'프레드 러스트만 지음 / 박제동 옮김 / 수희재 발행 / 1만2,000원

007 시리즈부터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까지 스파이 영화는 항상 수많은 관객들을 매혹시켜 왔다. 이편에서 보면 영웅이지만 저쪽 편에서 보면 악당인 이중성을 지닌 스파이들은 정체를 숨기고 아슬아슬한 위험을 헤쳐가며 정보를 수집한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세계 경제가 글로벌화하면서 스파이의 무대는 비즈니스 세계로 넓혀졌다. 수많은 기업들이 선진 기술을 훔치고 자사의 기술을 보호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CIA에서 24년 간 일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퇴직 후 비즈니스 전문 정보회사를 설립한 저자는 이렇게 살벌한 비즈니스 정보 전쟁의 시대에 기업이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특히 전세계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중국의 경우 워낙 다방면으로 공격적 산업 스파이 행위를 벌이고 있다면서, 아예 한 장을 할애해 중국의 산업 첩보 사례와 방식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놀라운 것은 중국뿐 아니라 미국의 우방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특히 이스라엘까지도 미국의 기술을 빼내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는 뉴욕과 파리를 오가는 에어프랑스 여객기의 일등석에 도청기를 설치해 미국 재계 리더들의 대화를 엿들었고,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강한 충성심을 이용해 F-16 기밀 설계도와 핵무기 기폭제, 미사일 방어 시스템 등등 주로 군사적 기밀 정보를 끊임없이 빼내 왔다. 이스라엘은 미국 기술인 조기경계관제기(AWACS) 플랫폼을 빼내 이를 이용한 첨단 팰콘 레이더 시스템을 만든 뒤 중국에 내다 팔기까지 했다.

국가 정보기관까지 나설 정도로 치열한 비즈니스 정보전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정보수집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 즉 스파이에 의한 정보 수집이라고 강조한다. 손자는 밀정을 “신의 경지이자 임금의 보배”라고까지 말하며 인간에 의한 첩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정보화 시대인 만큼 가장 먼저 인터넷이나 기타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정보를 찾는 게 중요하지만, 국가적 첩보전에 있어서나 비즈니스 세계에 있어서나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것은 사람에 의한 것이다.

기업의 정보전략도 ‘사람’에 맞춰져야 한다. 고액 연봉 등 정상적 방법으로 상대 기업의 기술자를 스카우트하는 데 실패했다면 이쪽에서 적절한 ‘스파이’를 선발해 적의 ‘인사부’로 침투시키는 방안을 쓸 수 있다. 이 작전이 성공할 경우 경쟁사의 계획이나 의도 등을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경쟁사가 우리 회사의 어떤 정보를 알고 있으며 알고 싶어하는지까지 알 수 있다는 것.

방어 전략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관리’다. 이는 단순히 입사시 비밀 유지 각서를 쓰게 하고 퇴사시 수년 내 동종업계 재입사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나라 IT 제조업체들이 많이 쓰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회사에 불만이 생기고 분노까지 생기는 순간, 그는 변심하고 스파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위해 경영자는 사원들과 입사 때부터 퇴사 때까지 긍정적 관계를 맺고 성실하며 원칙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어, 사원들로부터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회사의 이익에 핵심적 역할을 한 기술자라면 이에 맞는 최상의 물질적, 인간적 대우를 해야 경쟁사에게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전직 CIA였던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저자는 사생활 침해나 개인의 권리 등에 입각한 관점에서 봤을 때는 무서울 정도의 첩보 전략을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읽는 동안 약간의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잔인하고 삼엄하게 돌아가고 있는 게 사실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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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