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속 애물단지들이 멋쟁이 패션으로 깜짝 변신

명품족 A(33ㆍ여) 씨는 얼마 전 장식품이 떨어져 나간 핸드백과 허리 품이 넓어 맵시가 나지 않는 오버코트를 들고 명품 수선업체를 찾아갔다. 그는 거금을 주고 샀다가 사소한 흠 때문에 장롱공간만 차지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물건이 단돈 몇 만원에 감쪽같이 새 물건처럼 변신하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10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해외명품 열기로 덩달아 유행하는 것이 ‘리폼(reform)’이다. 연령불문하고 리폼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값비싼 명품을 저렴한 수선비용으로 재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유행과 취향에 따라 디자인을 변형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있던 물건을 재활용하는 것은 환경측면에서도 좋고, 정든 옷가지들과 작별하지 않아도 되는 등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

명품 수선전문점 ‘명동사(www.myungdongsa.co.kr)’ 명동 본점은 애지중지하는 옷이나 가방, 구두를 들고 전국에서 찾아 드는 멋쟁이들로 언제나 북적거린다.

리폼 수요가 높아지자 명동 본점 외에 서울 신사동과, 부산에 각각 지점을 냈고,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명품관에도 입점해 있다.

45년 전 명동에서 직원 두 명으로 출발했던 이곳은 이제 직원이 100여 명에 이르는 대형 수선 전문업체로 성장했다. 설립자 이갑순 회장은 “리폼 시장은 앞으로 계속 성장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낸다.

■ 백만원 넘는 무스탕 잠바, 17만원 수선비로 재탄생

B(56ㆍ남) 씨는 오래 전 해외에서 구입한 고급 무스탕 잠바를 들고 명동사 옷수선 실을 찾아왔다. 팔꿈치를 비롯해 군데군데가 떨어졌고, 칼라 역시 구형에다 매우 낡았지만 똑 같은 옷을 다시 구하기 어려워 버리지 못하고 있는 옷이다.

같은 색상과 소재의 가죽을 사용해 트렌디한 차이나 칼라로 바꾸고, 떨어진 부분은 패치워크 처리해 새 옷 못지않게 만들 예정이다. 수선비 견적은 총 17만원. 옷수선 실에서 설명을 듣던 B씨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돌아선다.

프리미엄진 마니아 C(23ㆍ 여) 씨는 50만원 대 트루 릴리전을 구입했으나 길이가 맞지 않아 입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비싼 제품이라 동네 수선집 대신 경험이 풍부한 명품 수선전문업체에 맡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청바지 단을 줄이는데 들어간 비용은 3만~4만원이다. 청바지제품의 경우 밑단 수선은 물론, 디자인을 변경해 허리나 엉덩이 사이즈를 늘려주기도 한다.

겨울이 되면서 모피 리폼 문의도 쇄도한다. 수 백만 원을 주고 샀다가 유행이 지나 못 입게 된 모피제품을 유행에 맞게 고쳐 입거나 딸에게 대물림 하려는 중년 부인들이 많다. 최근 D(28ㆍ여) 씨는 할머니로부터 여러 조각을 이어 만든 모피숄을 물려받았다. 구닥다리 모피숄은 일주일에 걸친 리폼 작업을 통해 귀여운 망토로 변신했다. 수선비용은 40만원.

파티문화가 일반화되면서 드레스를 들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늘고 있다. 드레스는 아직까지는 외국에서 사온 것이 대부분이어서 체형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E(30ㆍ여) 씨도 가슴크기가 맞지 않는 드레스를 가지고 이곳을 찾았다. 수선비용 10만원으로 자신의 체형에 맞게 드레스를 고치는데 성공했다.

■ 수백만원 줘야 하는 타조가죽 토트백을 30만원에

명품핸드백 하나 구입하려면 적어도 수십만 원은 줘야 한다. 비싼 것은 수백만 원을 훌쩍 넘는 게 보통이다. 구두나 옷과 달리 핸드백은 한번 사면 오래 쓸 수 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유행이 바뀌거나 실증이 나면 새로 구입하는 게 부담스럽다. 또, 손잡이 등 부분적인 훼손으로 못쓰게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핸드백 수선실에는 크기와 모양을 변경해 멋진 핸드백으로 변신한 제품들로 가득하다. 핸드백 수선의 경우, 손잡이 변경은 4만~5만원, 형태변경은 10만~30만원 가량 든다.

F(46ㆍ여) 씨는 에트로 손가방을 들고 와 큼직한 토트백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수선실은 본 제품의 가죽에 에트로 문양과 매우 흡사한 패브릭을 붙여 에트로 토트백을 탄생시켰다.

비용은 30만 원. 리폼에 크게 만족한 그는 그 동안 들고 다니지 않던 명품가방 6~7개를 더 가져와 리폼을 부탁한 상태다. 새 가방을 구입하는 비용의 3분의1도 안 되는 가격으로 원하는 디자인의 명품가방을 얻게 됐다.

G(46ㆍ여) 씨는 타조가죽을 가져와 원하는 크기와 디자인으로 제품을 맞춰갔다. 고급스러운 맞춤 토트백에 들어간 비용은 30만 원. 이 정도의 타조가죽 가방이면 일반 매장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

오래된 복주머니 모양의 버버리 핸드백이나 구형 셀린느 핸드백도 17만 원에 요즘 유행하는 핸드백으로 탈바꿈했다. 직원들 모두 명품 수선의 달인들이다 보니 디자인 감각이 남다르다. 요즘은 맞춤제작주문이 많이 줄었지만 30만 원 정도면 명품에 버금가는 세련된 핸드백 제작이 가능하다.

이밖에 구두 수선실에도 변신을 기다리는 제품들이 쉴새 없이 찾아온다. 숙련된 솜씨를 자랑하는 직원들의 손에서 해진 가죽이나 구두 굽은 물론 형태까지 완벽하게 변신한다.

제품 구입가의 10분의1도 안 되는 비용으로 원하는 스타일로 탈바꿈 시키는 리폼의 기술. 그러나 이 같은 리폼 기술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므로 집에서 섣불리 흉내 내거나 어설픈 수선업체에 맡겼다간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명품의 경우 핸드백 손잡이나 바지의 지퍼를 바꿔 다는 것조차 고도의 숙련기술이 필요하다는 게 명품 수선업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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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