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해법 제시"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은 196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42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월간 다리> <월간 독서> <한길문학> <한국문학평론> 등 문예지 주간을 역임했고 젊은 시절 한때 <약업신문> <경향신문> 등의 기자로도 활동했다. 정치, 사회, 문화 등 한국사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와 날카로운 글은 언제나 지성인의 지침서가 돼왔다.

중앙대 강사 시절인 1974년 유신반대 문인사건과 1977년 남민전 사건 등 두 차례 민주화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임헌영 선생에게 문학평론가보다 지식인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이유다.

“‘과연 지식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라고 물으면 나는 이런 얘기를 해요. 옛 동독의 여류작가중 크리스타볼프가 있죠? 볼프의 소설 <카산드라>를 예로 들죠.”

크리스타볼프는 독일 통일 전 동독의 사회주의를 굳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사회주의 작가다. 활동 당시 동독의 첩보기관으로부터 불순분자로 낙인 찍혀 끊임없이 미행을 당했음에도 사회주의 사회체제를 옹호했다.

그의 소설 <카산드라>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 카산드라를 20세기 유럽에 빗댄 작품이다. 신화 속 가계도를 보면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딸이자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파리스의 누이동생이다.

“카산드라는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예언 능력을 받지만 제우스를 거절해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게 됩니다. 트로이 전쟁 역시 예언하지만 왕 프리아모스는 그녀를 옥에 가두고 전쟁을 치릅니다. 사람들이 그녀의 예언을 믿었으면 전쟁하지도 않고, 하더라도 이겼겠지요.”

크리스타볼프는 소설을 통해 카산드라를 새롭게 조명했다.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그 소설에서 볼프는 머지않아 찾아올 동독의 몰락을 예견했다.

카산드라의 예언이 트로이아의 멸망과 아가멤논의 비참한 살해로 막을 내리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처럼 볼프의 예언도 동독의 몰락이 현실화되자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임헌영 소장은 현대 사회 지식인의 역할이 마치 카산드라와 같다고 말한다.

“볼프는 소설에서 동독의 미래를 예언한 것 같애. 동독 예언과 지식인의 역할, 고뇌를 작품에 담았죠. 많은 사람들이 지식인의 역할을 물으면 에밀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작품을 더 읽어봐야 돼요.”

임 선생은 지식인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문사철(인문학의 주류를 이루는 문학, 역사, 철학)에 대한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90년대 초반 사회주의 몰락 이후 거대 담론이 무너지면서 문사철이 대학과 사회에서 미치는 영향이 약화됐지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임 선생은 “20세기 작품을 이제 얘기하는 건 이런 걸 읽어 보란 얘기인데”라며 말을 이었다.

“마치 거대담론을 벗어나는 것이 세련된 것 인양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뷔너 상이나 부커 상, 콩쿠르 상과 같은 G7국가의 문학상은 거대담론을 기준으로 합니다. 세월이 변해도 지식인의 근본 기능은 변하지 않습니다. 인류역사에서 지식인은 항상 카산드라 같은 역할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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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