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자에게 띄우는 장문의 위로편지아테네 올림픽서 은메달 딴 여자핸드볼 팀의 극적인 드라마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아줌마들의 우승을 향한 열정 듬뿍품성·대중성 두루 갖춰… 척박한 환경 뚫고 정상을 향해 달려간 '감동실화'

등산은 정상을 향해 한걸음 내딛는다. 초보 산악인은 정해진 등산로를 열심히 살피며 산행한다. 산행에 익숙해진 중견 산악인은 쉬어갈 약수터를 고르고 눈 앞의 아름드리 나무에서 계절을 읽기도 하면서 산행의 맛을 조금씩 즐긴다.

산행이 몸에 밴 원로 산악인은 등산 자체가 산을 오르는지 들을 걷는지 분간되지 않으며 산과 자신이 하나 되는 순간을 언뜻언뜻 감지하면서 산에 삼투된다. 정상 등반에 집착하는 자는 등산 초보이거나 정상을 밟는 사명감에 자신을 세워두지 않으면 삶이 위태로운 지는 인생부도 난 자들이기 쉽다.

대중예술은 인생부도 난 이들의 인생 역전드라마를 주목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핸드볼 선수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척박한 땅에 심어진 나무처럼 변해 버린, 수많은 주변인에게 보낸 장문의 위로 편지다.

올림픽 2연패의 영광은 화려한 과거 경력과 일대일 대응되며 경기에 우승하고도 팀이 해체되는 선수들의 운명은 열심히 살았지만 명예퇴직을 당하거나 임용에 실패하거나 이성에게 실연당했던 산적한 패자들의 현재진행형과 등호로 연결된다. 영화는 관객과 공감해야한다.

그 공감의 코드가 어떤 코드냐는 서로 다르다. 인간인 이상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을 영화가 눈앞에 보여 줄때 객석의 관객은 공감과 감동의 큰 그물을 빠져 나갈 수 없는 물고기가 된다.

이 영화는 ‘한때 잘나간 적 있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는 관객과 ‘내 인생 왜 이렇게 꼬였을까’라고 거울 속의 자신에게 일주일에 한번 이상 질문을 던지는 관객들에게 남의 애기가 아닌 바로 내 애기라는 공감의 과녁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같다. 이때 우리는 생애 최고의 점술가의 점꾀를 듣는 한 사람의 옷입은 동물로 전락한다.

임순례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공중파 인간극장인 <히로시마의 두 여자>를 토대로 제작되었다.

실화는 다큐멘타리적 사실성으로 감동을 주지만 이 작품은 대중영화로 가공되면서 일부 영화적 재미가 고려된 각색의 과정을 거친 가공된 실화다. 절반은 대중적 관습에 내맡기고 절반은 임순례적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임순례적 영화로 볼 수 있다.

소재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여자 핸드볼팀의 극적 드라마다. 한국 여자 핸드볼팀은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매달을 획득한 화려한 전통과 국내에 다섯 개의 실업팀밖에 존재하지 않은 척박한 현실이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이 양면성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여 자연스럽게 영화의 서사적 부침을 가능케 하여 리듬과 재미를 줄 수 있는 최적의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하지만 실화는 두 번의 가공 공정을 거쳐 영화가 된 것 같다. 한번은 영화에 걸맞는 서사를 만들고 캐릭터를 구상하고 코미디 장면을 만드는 공정이며, 또 한번은 임순례 감독의 스타일로 변주된다.

첫 번째 과정은 대중성을 위한 필요악이며 두 번째는 감독의 낙인을 찍는 일이므로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임순례 감독은 그동안 자작 시니리오를 통해 배경도 자본도 모두 빈털터리인 이들이 생존의 전쟁에서 어떻게 훼손되고 일그러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가에 대해 사회학적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그래서 주인공은 <세친구>나 <와이키키브라더스>나 모두 잘나가지 못한 사회적 타자이거나 사회적 부적응자다.

이번 영화 역시 스포츠 종목 중에서 주변화된 핸드볼을 선택한 것은 동일하다. 미숙(문소리 분)과 혜경(김정은 분)이 왕년의 스타플레이어였다는 사실과 지금도 그 자긍심으로 생활의 도전을 당당하게 맞서는 핸드볼 선수라는 점은 다소 차이가 있다.

이는 실화를 근거로 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아줌마 선수군단의 장애극복과 투혼을 서사적 장치로 끌어들이기 위한 영화적 장치로 보인다.

아줌마 선수들은 ‘생활고와 감독과의 불화와 세대간의 갈등’이라는 삼중고의 장애물을 통과해야한다.

영화는 장애물을 한 개 한 개 통과 할 때마다 관객에게 알 수 없는 해소감과 고양된 기분을 제공한다. 미숙은 남편이 사업실패로 수배생활을 하여 생계를 위해 마트에서 일하고 혜경은 한국여자 핸드볼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나 해직되어 선수로 뛰어야하고 전력 보강을 위해 합류한 아줌마 선수들은 신인 선수들에게 연금에 눈이 멀어 태능에 들어온 욕심 많은 선배로 낙인찍히며 갈등이 생긴다.

이 세 가지는 한국 핸드볼의 재건과 올림픽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상처는 좌절의 원인제공자이기도 하지만 창조적 에너지의 근원이기도 하다. 아줌마 선수가 된 이들이 각자 갖고 있는 삶의 상처는 그들을 더 강한 투사로 단련시키는 담금질 역할을 한다.

스포츠 영화는 하나의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주인공은 반드시 우승이나 역전의 주역이 되며 주인공이 속한 팀은 반드시 승리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포츠 영화에서 승리는 종교가 된다.

연애영화에서 사랑이 종교이고 비장의 무기이듯이. 결국 스포츠 영화는 대부분 일종의 우승 성공담이거나 스포츠 영웅 탄생기로 귀결된다. 연애 영화가 연애 성공이야기이거나 실연 극복기를 지향하듯 괴물 영화는 괴물퇴치기가 영화의 핵심이다.

이 영화 역시 성공의 드라마를 상업영화의 관습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그동안 임순례 감독의 스타일이 낙인처럼 존재하는 두 시퀀스에서 두 번씩이나 장르관습을 위반하고 거절한다.

한 장면은 혜경이 미숙의 선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감독 승필에게 제안한 달리기 시합이다. 대중영화는 보통 미숙의 태능선수촌 합류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한 영화적 장치로 달리기 시합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처리한다.

하지만 관습적 기대와 반대로 혜경은 지고 안승필이 승리하지만 안승필의 변심으로 미숙의 태능 합류에 면죄부가 주어진다. 또 한 장면은 아테네 올림픽의 핸드볼팀 결승전 장면에서 승부던지기 결과다.

일반적인 대중영화에서는 마지막 순간에 주인공이 속한 팀이 극적인 승리를 이루며 관객들을 승리감에 도취되어 극장문을 밀고 나가게 한다. 이 영화는 안승필 감독이 “여러분들은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여주었습니다.

저에게도 지금이 생애 최고의 순간입니다.”라고 감동적인 대사로 우승을 대신한다. 세계적인 핸드볼 스타이자 주인공인 미숙은 골 넣는 것에 실패하고 팀은 준우승에 그친다.

은매달은 실화에 근거했기에 당연한 결과이지만 미숙의 실패가 후경의 포커스 아웃되어 환호하는 덴마크 선수들과 주저앉는 한국 선수들을 포커스 아웃되어 실루엣으로 아쉬운 감정을 배가시킨다.

임순례 감독은 우승보다는 열악한 조건에서 헝그리 정신과 아줌마 정신으로 무장하여 우승을 향해 달려온 이들의 삶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것은 감독이 그동안 지향해온 타자 혹은 일등을 하지 못한 대다수의 패자들에 대한 지지선언이며 우승보다 소중한 준우승이 우리의 삶에 최고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 순간을 담기위해 이 순간을 소리 없이 말하기 위해 이 영화는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우승을 지향하거나 아름다운 패배를 선호하거나 결국 우승하지 못한, 인생의 경기에서 1승을 올리지 못하는 다수의 관객을 향한 위로와 치유의 편지인 것이다. 이 영화는 이 단순한 한 가지 메시지에 작품성과 대중성을 걸고 있다.

■ 문학산 약력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현 세종대 강사, 영등위 영화등급 소위원, 한국영화학회 이사.저서 <10인의 한국영화 감독>, <예술영화는 없다><한국 단편영화의 이해>. 영화 <타임캡슐 : 서울 2006 가을>, <유학, 결혼 그러므로 섹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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