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흑인 랩댄스 열풍 점화… 음악을 넘어 신세대 문화 창조회오리 춤으로 무장한 '난 알아요' 가요차트 17주 연속 정상 석권

3인조 남성 랩 댄스 트리오 ‘서태지와 아이들’은 대중음악계의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며 ‘신세대 문화’ 태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음악과 보컬을 맡은 서태지와 댄스와 코러스를 맡은 이주노와 양현석은 흑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생소한 랩 댄스 뮤직으로 강렬한 충격파를 날렸다. 1997년 삼성경제연구소는 4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간 이들의 1집부터 4집까지의 넉 장 앨범을 역대 국내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평가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70년대 청년문화, 80년대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파괴력을 넘어 90년대를 ‘신세대 문화’로 규정한 거대한 파도였다. 당시 가정과 학교생활에 기죽은 청소년들은 열광적 지지 세력을 넘어 대중음악 산업의 막강 파워그룹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히 ‘서태지 신드롬’이라 불리는 이들의 신화는 90년대의 사회 문화 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다. 서울북공고를 중퇴하고 록그룹 시나위의 베이스기타리스트를 거친 서태지는 1991년 가을 댄서 양현석과 이주노를 만나 팀을 결성했다. 시나위 시절에 인연을 맺은 신대철과 김종서, 그리고 기타리스트 손무현, 섹스폰 이정식과 앨범 녹음을 마무리했다.

힙합과 댄스음악을 주조로 록과 발라드를 절묘하게 버무려진 1집 수록곡은 총 10곡.

타이틀 곡 ‘난 알아요’와 흥미로운 영어버전 ‘Blind love', ‘환상 속의 그대’, ‘내 모든 것’, '이제는’ 등 1집 수록곡들은 새롭고 흥겨웠다. 랩과 일명 회오리 춤 그리고 컴퓨터 음향으로 무장된 데뷔곡 ‘난 알아요’의 빅히트는 발매 3주 만에 3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각종 가요 인기 차트에 무려 17주 동안 정상을 석권했다.

그 결과, 주문량을 댈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이었던 수요는 100만 장을 훌쩍 넘기는 대박으로 이어졌다. 순식간에 주류 음악이던 발라드와 트로트가 랩 댄스에게 권좌를 내줘야 했다.

무명 레이블 반도음반이 주목 받는 메이저 제작사로 거듭난 것은 당연했다. 작사, 작곡, 편곡 및 프로듀싱, 엔지니어링까지 도맡은 탁월한 능력을 선보인 서태지는 ‘댄스 뮤직은 음악성이 떨어진다’는 편견마저 불식시켰다.

첫 무대는 1992년 3월 데뷔 음반 발표와 더불어 공개적으로 신인가수들의 음악을 평가하는 MBC TV ‘특종! TV연예’프로에 등장했다. 이날 방송이 대중음악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순간임을 알아 본 어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날 이상벽, 전영록 등 심사위원들의 평가도 찬반양론이 있었지만 유보적이었다. TV 앞에 있던 기성세대들의 마음은 가사를 중얼거리는 괴상한 노래와 자유분방한 의상을 입고 무대 위를 방방 뛰어다닌 이들에 대해 마땅치 않았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 땅의 ‘아이들’은 달랐다. 새로운 영웅이 등장했음을 직감했다. 이에 MBC TV는 멤버들을 다큐멘터리 ‘인간시대’의 주인공으로 전격 소개했었다.

일부 표절 논란도 있었다. 당대 장안의 춤 꽤나 추는 선수라면 다 아는 남성듀오 밀리 바닐리의 ‘Girl You Know it's True’와 ‘난 알아요’가 “리듬과 멜로디에서 흡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논란이 불거질 경황이 없었다.

이미 ‘난 알아요’는 단순한 음악적 의미를 뛰어넘어 신세대들을 물론 새로운 문화에 당혹감을 느낀 기성세대들에게도 공히 강력한 사회문화적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목말라 하던 10대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의 몸짓, 말 짓, 옷차림 하나하나는 청소년들에게 관심의 표적이 되었다. 상표를 부착한 옷을 그대로 입은 독특한 의상은 곧바로 10대의 유행 패션이 되었다. 대입 준비에 한창인 학원가에서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수업 중에 강사가 학생들에게 “알겠냐”고 물으면 여기저기서 랩을 부르듯 ‘난 알아요’라고 대답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던 것.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은 결코 ‘음악’만으로 평가될 수 없는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었다. 이후 파격적인 내용의 가사와 다양한 음악적 실험으로 변신을 거듭한 서태지는 한때 ‘문화 대통령’의 권좌에 오르며 이제는 신화적 인 뮤지션으로 군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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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