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그리고 그 그곳에 나무를 제대로 좋아하는 사람은 나무 중에 겨울나무 구경을 최고로 치기도 한다. 제각기 무성하고 개성 넘치는 잎과 꽃들에 가려져 있던 몸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가 옆 나무에 치여 균형을 잃은 나무도 보이고, 차곡차곡 섬세하게 가지들을 발달시킨 줄기의 미학을 느끼기도 한다.

나무줄기 끝마다 제각기 다른 겨울눈(冬芽)을 바라보며 새봄이 오면 그 속에서 튀어나올 연린 새싹을 상상하기도 한다. 줄기 속에 웅크리고 숨어 때를 기다리는 잠자는 눈을 보면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겨울나무들은 수피가 돋보인다. 순결한 흰빛의 사스래나무나 거제수나무도 있고 옆으로 튼 반질거리는 수피를 가진 산벚나무도 있고, 울퉁불퉁 콜크가 발달한 굴참나무도 있고, 쪽동백도 보이고….

때론 이 겨울나무 숲 사이에서 드러난 전나무의 아름다운 수형이 돋보이기도 하고, 혹은 다른 나무 가지에 매달려 사는 겨우살이가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다릅나무 줄기 속에 감추어져 있을 나무줄기의 개성 있는 속살을 상상하기도 한다.

물박달나무도 수피(나무껍질)가 가장 개성 있는 모습의 하나이다. 회색이나 갈색 혹은 회갈색의 수피는 말 그대로 너덜너덜 일어나 있다.

그래서 사람마다 가장 지저분한 수피라고 격하하기도 하고 할일 많아 가지 가득히 회색포스트잇을 겹겹이 붙여 놓은 모습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나무마다 너덜거림의 정도가 많아 겹겹이 덮이기도, 간격이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나무나 풀들은 그 각각을 구분할 때 꽃이나 열매로 구별하지만 이 물박달나무만큼은 수피로 구별한다.

잎을 비롯하여 다른 부분들은 같은 집안의 박달나무나 자작나무 같은 것과 따져봐야 구분이 가능하지만 이 수피만큼은 그냥 한번에 알아버린다. 그러고 보니 이 나무는 그냥 숲에서 마주 대하는 순간 그 존재를 알게 되어 그동안 잎이나 꽃들을 눈 여겨 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물박달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큰키나무이다. 크게 자라면 20m까지도 높이 자라는 나무이다. 그래서 사실 산에 가면 줄기만 눈 높이에 보여 잎이나 열매들을 눈여겨 보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왜 물박달나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황해도 방언이었다고 하는데 박달나무치곤 물러서 그런지, 물에 젖어도 잘 타서 그런지, 혹은 주변에 계곡 같은 것이 있는 곳에 자라서 그런지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보았으나 딱 부러지게 그 사연을 추정할 수 없어 답답하다.

지방에 따라서 째작나무라고도 하는 이 별명의 유래는 수피에 기름성분이 있어서 불을 붙이면 째짝거리며 잘 타서 그러하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자작나무집안이 주로 그러하지만 수피는 불에 잘 붙는데 기름성분이 많기 때문이고 이는 추운 지방에서 주로 자라는 나무들의 세포 속 수분이 어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실 물박달나무는 주로 경기나 강원도 같은 중부이북에서 자라니 남쪽 분들은 이런 산에 와서 물박달나무의 특별한 수피를 보고 신기해하시곤 한다. 특별한 쓰임새는 별로 없지만 어린 순을 약으로 쓰기도 한단다.

꽃은 5월에 핀다. 물론 풍매화는 화려한 꽃잎 같은 것이 없는 꽃이지만. 올해엔 이렇게 한 부분만 정확히 아는 나무들을 찾아 이리저리 알아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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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