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진 사진전 'The Edibles'

자연을 ‘있는 그대로’ 찍지 않는 사진작가가 있다. 이미 존재하는 피사체에 대해 앵글을 맞추어 사물의 본질을 조명하는 방식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사진이라는 장르의 기본적 정의인 ‘사실성’에 대해 거꾸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윤진영의 사진전 는 자연의 소재 자체를 자신의 창의력으로 재배치, 조합한 뒤 이를 사진으로 ‘보존’한 기록물들로 구성돼 있다.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작가의 의도된 주제의식으로 이뤄진 작품들이 선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용된 소재 모두가 일상적으로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자연의 먹을 것들, 즉 식재료들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두부(頭部)를 투명하게 투사한 듯한 ‘Meditating'은 생선의 내장과 오징어의 눈, 그리고 우윳빛 묵을 사용해 작품을 만든 뒤 촬영한 것이다. 구절양장처럼 오밀조밀 자리한 생선 내장은 인간의 뇌를 연상시킨다. 네 개의 오징어의 눈 또한 인간의 안구와 세상을 향한 시선을 암시하듯 명징하게 와 닿는다.

그러나 그 뿐, 더 이상 복잡하지 않다. 작가가 강조하고 싶어한 부분에 정확히 관객의 의식이 집중된다. 대칭과 반복을 그다지 달가와하지 않는 현대 미학의 조류에 비추어보면 작품 전반에 걸쳐 모두 피사체를 중앙 배치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작품 ‘Cycle of Life1'은 붉은 실고추를 둥지처럼 연출한 뒤 메추리 알 세 개를 중심에 놓은 뒤 촬영했다. 가장 직접적인 생존의 도구를 통해서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연결시켰다.

갓 채취한 듯 초록빛 생생한 돌나물 속에 살짝 인간의 얼굴 형체를 드러낸 ’Spiritual Growth'도 쉽게 인상에 각인되는 작품중 하나다. 작품이 암시하는 뜻 뿐 아니라 색감이 주는 활기, 역동성, 살아있는 느낌이 고루 배어나온다.

이외에도 검은 콩들과 묵으로 빚어낸 ‘Embedded Thoughts', 뱅어포를 사용한 ’Emanating1' 등 작품 하나하나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작가가 가졌을 발상의 근원에서부터 표현법, 굳이 복합적인 여러 창작 단계를 거쳐 사진작업으로 마무리 한 독특한 기법과 열정에도 호기심을 던져준다.

새싹채소, 초고추장, 미역, 깨, 해산물의 부산물 등 식탁 위에서나 보아왔던 재료들이 창작의 장르로 어떻게 변모할 수 있는지 일상 속의 예술을 빚어낸 작가의 시선이 사뭇 흥미롭다.

표면상으로는 사실성과 기록성을 본질로 삼는 ‘사진’의 본질에 ‘위배’되는 시도다.

하지만 장르의 형식과 본디의 정의가 무엇이든, 큰 틀에서 예술이 갖는 의미를 돌아보면 이러한 시도가 갖는 의미 또한 인정받을 만 하다. 자연의 생태계, 즉 먹이사슬이 가진 근원적인 생명성을 우리 삶과 가장 가깝고 절대적인 소재를 통해 표출함으로써 또다른 방향에서의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작가 윤진영은 홍익대 사진학과 MFA(Master of Fine Arts), 아리조나 주립대 사진학 MFA 출신으로, 2000년 아리조나에서의 첫 전시회를 시작으로 이번에 세 번째 발표회를 맞고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대부분 가로, 세로 약 100-150cm 정도의 크기. 작가의 손으로 직접 설정한 피사체의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전시회는 29일까지 갤러리 스페이스 아침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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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