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속엔 민족수난 슬픈 사연이…

숲 가장자리 곳곳에 눈이 쌓여 있다. 봄이 온다면, 따사로운 봄 볕이 대지를 비추일 것이다.

그리고 그 대지의 기운은 땅속에 잠들어 있던 온갖 생명들을 일깨워 줄 것이다. 연두빛 새싹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고 그리고 그 끝에 자그마한 봄꽃들이 올망졸망 피어날 것이다. 그 봄이 기다려진다.

가지고 있던 질서나 가치들이 한번에 뒤엉켜버린 그래서 누구에게나 뒤숭숭한 시기여서인지 매년 어김없이 찾아들 그 대자연의 흐름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제비꽃은 우리가 가까이 두고 가꿀 수 있는 수많은 들꽃의 하나이다. 다정한 들녘, 한적한 시골길, 나지막한 언덕 위, 동네 빈터의 양지바른 곳, 아주 깊은 심심 산골…. 그 어떤 곳에서나 변함없이 봄소식을 전해주는 제비꽃. 제비꽃은 연약하면서도 청초하고, 앙증스러워 질기고 강한 제비꽃.

제비꽃이란 이름은 꽃의 날렵한 자태와 빛깔이 제비를 닮았으며 제비가 돌아오는 봄에 꽃이 피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제비꽃의 이름은 이뿐이 아니다.

오랑캐꽃이라고도 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와 각 마을마다 이 꽃이 피어날 무렵이면 북쪽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꽃의 밑부분이 부리처럼 길게 튀어 나왔는데(이 부분을 식물 용어로 ‘거’라고 부른다) 이 모습이 오랑캐들의 머리채와 같아서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니 사랑스러운 꽃모양새와는 달리 우리민족의 수난의 역사를 말없이 보여 주기도 한다.

꽃 모양이 씨름하는 모습 같아 ‘씨름꽃’ ‘장수꽃’, 이른 봄 새로 태어난 병아리처럼 귀여워 ‘병아리꽃’ 나물로 먹을 수 있어 ‘외나물’, 나즈막한 모양새를 따서 ‘앉은뱅이꽃’이라고 하고, “보라빛 고운 빛 우리집 문패꽃 꽃중에 작은 꽃 앉은뱅이랍니다”하는 동요의 바로 그 꽃이다.

또 소녀들의 반지가 되어 ‘반지꽃’이라고도 한다. 제비꽃류를 통칭하는 속명이 비올라(Viola)인데 색깔 중에서 보라색을 바이올렛(Violet)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제비꽃의 보라색을 보고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비꽃은 흔히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다 자라봐야 그 키가 한 뼘을 넘지 못한다. 원줄기없이 뿌리근처에서 주걱형의 잎들이 여럿 달려 그 사이에서 크고 작은 꽃자루가 올라와 그 끝에 제비처럼 날렵한 꽃송이들을 매어 단다.

봄이면 양지바른 풀밭에서 옹기종기 포여 피는 꽃들은 한쪽은 뭉툭하게 모아지고 한쪽은 아름답게 벌어진 독특한 모양의 꽃잎을 가진다. 마치 빨래집게가 올을 집듯 꽃송이 가운데서 꽃을 잡고 있는 꽃받침의 모습도 독특하다. 6월이면 익기 시작하는 열매는 익으면 3갈래로 갈라져 그 안에 가지런한 종자들을 드러내 놓는다.

어린 잎을 무쳐먹거나 국으로 끊여 먹기도 튀겨 먹기도 한다. 잎을 소금물에 데쳐 썰어 밥에 섞고 제비꽃을 몇 송이 얹어 만드는 제비꽃밥과 같은 다소 호사스런 봄의 식단을 마련해봐도 좋을 것이다. 한방에서는 약이 되고 염료로 변신하기도 하며 서양의 제비꽃집안들은 향료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새 봄에는 땅만 보고 다니자. 발아래 자라는 이 사랑스러운 존재도 더없이 소중한 이 땅의 우리 식구라는 것을 알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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