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표준영정 제79호 탄생까지문헌·유전자 분석 등으로 실제 모습 철저하게 추적전통 영정기법 활용얼굴·화장법·머리모양 등 재현

논개 표준영정 그린 충남대 회화과 윤여환 교수.
조선의 의기(義妓) 논개(1574~1593)의 표준영정이 처음 만들어져 지난 4일 국가표준영정 제79호로 지정됐다. 그동안은 경남 진주에 있는 논개사당에 봉안돼 있던 ‘미인도 논개’가 표준영정처럼 사용되어 왔다.

역사 속 인물 영정의 경우 흔히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작품이 대부분인데 반해 이번에 문화관광부에서 지정한 논개의 표준영정은 ‘과학적 고증’을 통해 그려낸 점이 큰 차이다.

조선시대 전통 영정기법으로 제작돼 모습을 드러낸 논개표준영정은 지난 2006년 진주시와 장수군이 전국 현상공모를 통해 충남대 윤여환 교수를 제작가로 선정했고, 모두 7차례에 걸쳐 문광부 표준영정심의위원회의 엄격한 심의를 통과했다. 윤 교수는 정문부 장군과 유관순열사의 표준영정을 제작한 바 있다.

■ 과학적 고증으로 실제 논개 재현

논개는 전북 장수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경남 진주 촉석루에서 일본군 장수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인물. 윤여환 교수는 “논개 표준영정 제작을 위해 장수와 진주, 다시 말해 영ㆍ호남이 만났다.

장수와 진주에 남아있는 논개 관련 문헌에서 내용상의 차이점이 있어 고증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영정을 그리며 시ㆍ 군 간의 갈등이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남아있는 문헌을 토대로 얼굴과 화장법, 머리모양과 옷을 고증했다. 2년간의 고증 끝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논개 영정이 완성됐다.

제작자인 윤 교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새로 그렸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는 이어 “임진왜란 이후의 사료는 많은 데 비해 이전 사료는 전쟁으로 소실돼 고증에 애를 먹었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우선 얼굴 모양을 찾기 위해 ‘얼굴연구소’ 조용진 박사에 의뢰해 논개의 성장지인 장수지역의 신안 주씨(新安 朱氏) 문중을 촬영해 분석했다.

논개는 본명은 알 수 없으나 성은 주씨(朱氏)이고, 본관은 신안(중국)으로 알려졌다. 조용진 박사는 신안 주씨 여자의 얼굴특징을 150여 군데로 나누어 분석해 동일형태의 용모유전인자를 모았다.

조 박사는 “정면, 측면, 반측면 등 다양한 각도에서 얼굴 특징을 분석했다. 실측과 사진으로 하는 간접 측정을 병행했고 두피 분석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인 평균 얼굴 수치에서 특정 씨족 사람들의 얼굴 수치를 빼면 씨족별로 특징이 나온다. 예를 들어 한국인 평균 중안길이(미간부터 코 밑)가 64mm인데 비해 신안 주씨의 평균은 65mm여서 신안 주씨의 얼굴특징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찾은 신안 주씨의 얼굴특징 중 하나가 흔히 ‘몽고주름’이라 알려진 내안각표피. 눈 안쪽 선이 말려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한국인 60%가 내안각표피의 눈을 갖고 있지만 서양인은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이 없다.

최근 성형수술이 발달함에 따라 내안각표피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없어지는 추세다. 조용진 박사는 “용모 유전자는 수가 적기 때문에 얼굴 수치를 측정하면 씨족별로 특징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가채(여성의 쪽진 머리에 가짜 머리를 크게 덧붙여 얹는 것)는 제작 초반 19세기 궁중 가채를 모델로 그리다 13차례나 모양을 바꾸어 제 모습을 찾았다. 가채 고증은 고전머리연구소 손미경 소장이 담당했다.

손 소장은 논개가 살았던 시대보다 70여 년 앞선 사람인 변수(1447~1524)묘에서 출토된 목각인형 머리모양과 관련 서적을 참조해 가채를 재현했다. 손 씨는 “논개는 가체금지령이 내려진 영조 이전의 인물이므로 이전 영정 속의 쪽진머리나 댕기머리가 아니라 화려한 기녀머리여야 제격이다”고 밝혔다.

다만 떨잠(가채에 꽂는 장식품)이 쓰인 화려한 가채와 빨간 댕기 머리는 임진왜란 이후 유행하던 스타일이므로 논개와 맞지 않다고 한다.

논개의 복식은 ‘고전복식전문연구소’에 의뢰해 옷을 제작했다.

윤 교수는 “논개영정 의상문양은 당시 유행하던 문양인 연화만초문사(蓮花蔓草紋紗)인데, 안동 김씨 묘(1560년대) 출토복식과 변수(1447~1524)묘 출토복식을 참조해 제작했다. 복식은 논개의 거사일이 하절기인 점을 고려해 겨울 비단 옷에서 여름무명 옷으로 바꾸었다”고 밝혔다.

논개 영정의 얼굴화장은 진수아미(螓首蛾眉)미용법으로 그렸다. 이 화장법은 족집게를 이용한 ‘뽑는 미용법’으로 고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유행한 미용법이다.

진수아미는 넓고 네모반듯한 이마에 초승달 같은 눈썹인 여자 얼굴을 형용한 말로서, 오랫동안 이 미용법이 아름다운 여인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윤 교수는 “고구려 벽화의 여인상, 가락국기 김수로왕의 황후 허황옥 등과 조선전기 하연부인상, 운낭자상 등 조선여인들의 얼굴도 진수아미 미용을 한 경우가 많아 논개 얼굴도 이 미용법을 따랐다”고 설명했다.

논개 영정에서 고증 없이 그려진 대목은 열 손가락에 낀 옥가락지로 윤 교수는 상징성을 위해 ‘일부러’ 그렇게 그렸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 그린 그림은 적장을 끌어안는 자세로 경직된 모습이었다. 지금은 적장을 향해 미소 띤 얼굴로 열 손가락에는 옥가락지를 끼고 있다. 20살이지만 의기와 품격이 느껴지도록 그렸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완성된 표준영정은 15일 국립진주박물관에 인계됐다.

윤 교수는 진주시와 장수군에는 각각 2점, 1점의 사본을 추가로 그려 인계하기로 했다. 진주시는 사본을 의기사에 봉안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이전 영정 크기에 맞춰 지은 사당 또한 새 표준영정의 크기에 맞춰 재공사를 할 예정이다.

■ 김은호 화백의 '미인도 논개' '춘향도'
1930년대 경성 기생 같은 모델로 그려

춘향영정, 논개영정

논개표준영정은 지난 2005년 6월 진주지역 한 시민단체가 '논개를 기리는 사당'인 의기사에 봉안돼 있던 '미인도 논개'가 친일 전력이 있는 김은호 화백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뜯어내면서 다시 제작하는 계기가 됐다.

김은호 화백은 1900년대 대표적인 동양화가로 1937년 <금차봉납도>를 그려 조선총독부 총독 미나미 지로에게 증정하는 등 태평양 전쟁기간 미술계에서 친일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인도 논개’의 모델은 서울기생 김영애다. 김은호 화백이 말년에 남긴 자서전을 보면 1939년 춘향도를 그리기 위해 서울기생 김영애를 모델로 사진을 찍어 그렸다는 구절이 나온다.

얼마 후 논개가 태어난 장수군에서 김 화백에게 논개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춘향도를 모형으로 다시 논개를 그리게 된다. 김은호 화백의 ‘춘향도’와 ‘미인도 논개’ 속 주인공이 서로 닮은 것은 이 때문이다.

‘미인도 논개’에 드러난 의상과 화장, 머리 모양은 모두 1930~40년대 ‘서울 기생 스타일’인 셈이다.

역사 속 인물의 영정의 경우 그림과 기록 등 사료가 부족해 고증이 쉽지 않기 때문에 특정인물을 모델로 하거나 상상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윤 교수는 “서양 중세 때 그린 그리스도의 얼굴을 모아보면 화가의 얼굴을 닮아 있다.

백제 도미부인 그림도 그렇다. 과거 인물에 대한 그림은 대부분 상상으로 그리기 때문에 화가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