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건강' 강조하는 클리닉의 새로운 패러다임의대들 예술과목 속속 개설… 암환자에게 명상·영성치료 병행하는 병원 늘어

“마음을 비우세요. 마음이 평온해야 병도 낫는답니다.”

종교지도자가 아픈 신도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요즘 병원에 가보면 이처럼 마음건강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세계를 치료하는 정신과는 물론이고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치료의 역점을 마음건강에 두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마음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사들은 매스나 약물 못지않게 명상이나 기도 외에 음악, 미술 등 예술치료가 명약이라고 믿는다.

마음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의학에 예술이나 종교 등을 도입하려는 노력은 10여년 전부터 일기 시작해 최근 본격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제 생의학(biomedical)적 접근과 치료를 넘어 인문사회과학과 종교, 예술의 측면에서까지 인간의 고통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2003년 연대의대는 국내최초로 문학강좌를 개설했다. 문학을 통해 학생들에게 삶의 현장에서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영혼까지 치료할 수 있는 자질을 키워주기 위해 문학과목을 개설했다는 게 이 학교 관계자의 설명이다. 연대에 이어 다른 의과대학에서도 예술과목 개설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 14일 고대안암 병원은 국내 최초로 ‘통합의학센터’(센터장 신장내과 김형규 교수)를 열었다. 통합의학센터는 의료진들이 스트레스, 비만 뿐 아니라 뇌와 척추환자 및 암환자 등 환자의 질병과 증상에 따라 명상치료와 음악·미술 치료 등 다양한 치료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샘안양병원은 환자의 마음까지 치료한다는 목적으로 지난해 9월 ‘리빙샘 치유센터’를 설립해 암환자를 대상으로 일반치료와 함께 미술치료와 음악치료 그리고 기도와 찬양 등 영성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리빙샘 치유센터 손영규 원장은 이비인후과 전문의이자 치유신학을 전공한 목사다.

아주대의대 방사선종양학과 전미선 교수는 암환자들에게 방사선치료와 명상치료를 병행하도록 하는 ‘이단요법’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암환자 중 마음의 안정으로 인해 병세가 호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현대과학의 첨단을 달리는 병원에서 이처럼 음악이나 명상 등 언뜻 비과학적으로 보이는 치료법이 권장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건강의 정의를 육체, 사회, 정신에서 영혼까지 확대하려는 세계 의학계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헌장 전문에는 건강을 육체, 사회, 정신적 영역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차츰 이 세가지 건강뿐 아니라 영혼의 안녕에 대한 인식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WHO의 헌장전문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WHO 집행이사회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는 연대의대 예방의학과 손명세 교수는

“세계적으로 여론이 모아져 1997년 WHO 집행이사회에 영혼의 건강을 포함시킨 새로운 건강정의안이 제출됐으나, 영혼의 건강 속에는 종교적 색채가 많이 개입돼 있어 총회에서 부결됐다”고 설명한다.

아랍,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종교마다 영혼(spirit)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 통일된 인식과 표준화된 규범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손 교수는 WHO에서 공식 개정이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실제로는 유럽과 미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건강의 정의를 영혼의 건강까지 확대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영혼건강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로 인해 의료계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몸과 마음의 연관성에 근거한 심신의학(心身醫學)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 중 하나로 하버드대학에서는 환자에게 유효성분이 없는 일명 ‘가짜 약’을 투여해 심리효과로 병을 고치는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의과대학에서는 대부분 명상을 필수 과목으로 가르친다. 또, 환자가 약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병을 치료하는 ‘자가 치유법’(self-healing)을 강조하는 병원이 많다.

그런데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영혼건강과 정신건강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 전우택 교수는 영혼과 정신 건강은 깊은 상호관계에 있으면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정신건강은 현실속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인데 반해 영적건강은 윤리적인 가치관, 희망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나 의미 등 현실을 넘어선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살다 보면, 좌절이나 죽음과 같이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혔을 때 이를 극복하는 힘은 정신건강이 아닌 영적건강 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적건강은 현실을 초월하는 능력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들으며 세상일을 잊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일종의 영혼치료이지요.”

이처럼 영혼을 건강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경향은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에 기인한 것이다.

많은 이들은 온전한 건강을 위해 영적건강이 필수불가결 하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영적건강에 대한 개념과 의도를 잘못 이해해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이를 상업적으로 악용할 소지 또한 높아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