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선거… 50개주 선거인단 중 총 270표 확보하면 당선정책선거… '너 죽고 나 살기'식 대신 정책으로 심판 받아선거자금… 천문학적 선거·유세비용 모두 기부금으로

선거 관련 글 쓰느라 어지간히 묻고 돌아다니다가 임자를 제대로 만났다. 통성명도 안 한 어느 중년 미국 아저씨가 표까지 그려가며 무려 한 시간을 넘게 설명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붙들려 있다가 수업 있다는 핑계로 겨우 빠져 나왔다.

미국이 여성 또는 흑인 대통령 맞을 준비가 됐냐는 질문에 그 분이 말하기를, 국민들이 부시대통령을 싫어하기 때문에 공화당 재집권 가능성은 거의 없단다.

“부시” 이름만 나오면 입에 거품 무는 미국인들 내 주변에 수두룩하고, 부시 집권기간이 며칠 남았나를 알려주는 시계도 팔리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었기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그 분이 덧붙이기를 오바마와 힐러리에게 들어오는 엄청난 규모의 기부금 그런 뭉칫돈을 당선 가능성이 없는 후보에게 선뜻 내놓을 만큼 머리 나쁜 큰 손은 없다는데, 이 역시 말이 된다.

이번 미국 대선 지난 한국 대선과 비슷한 점이 있다. 잘잘못이야 역사가 후에 밝힐 일이지만, 아무튼 민심 얻기에 실패한 노 전대통령 덕을 본 것이 이명박 새 대통령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니까. 한미 두 대통령의 인기가 땅을 치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비슷하다. 그 중 하나가 경제정책 실패.

참고로 지금 미국에선 전반적인 경기침체 (Recession)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 돼 있다. 두 나라 선거 모두에서 “바꿔보세” (미국에선"Change!")가 화두로 떠오른 것 어쩌면 당연한 일.

퍼스트레이디 출신 여성후보와 남성후보가, 이기기만 하면 대통령직은 거의 따 놓은 당상이라는 듯, 피 튀기는 경선을 치루고 있는 것도 우연찮게 똑같다. 물론,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부시 대통령 재선에 공헌한 미 보수층의 결집력을 가볍게 볼 수 는 없다! 어려 모로 닮은꼴인 한미 두 나라의 선거지만, 간접 선거, 정책선거, 그리고 돈 선거라는 세 가지 점에서 서로 구별된다.

■ 간선제는 연방-주정부 대립의 산물

한국 대선은 국민선거에 기초한 ‘직선제’이지만 미국 대선은 “일렉토럴 칼리지” (Electoral College)라 불리는 간접 선거이다.

오는 11월에 미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일반선거(General election)가 있을 예정인데, 대통령 당선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것은 정작 이 국민투표가 아닌 “선거인단” (Electors)의 투표를 통해서다. 지난 주 설명한 선서한 대의원 (Pledged Delegates)들이 주민의사를 반영하여 후보지명 투표하는 방식과 비슷한 논리이다.

주별로 인구수에 비례한 다양한 숫자의 선거인단을 (적게는 3 명에서 많게는 55 명까지 다양) 갖고, 이 선거인단은 자기 주의 주민투표 결과를 반영하여 투표할 ‘의무’가 있다. (물론 꼭 그런다는 보장은 없지만) 전국 50개주 선거인단으로부터 총 270표를 확보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직 간선 혼용이랄 수 있는 이런 '복잡' 한 방식을 쓰고 있는 이유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하나는 일렉토럴 칼리지는 ‘보통사람들’ 즉 일반대중의 판단능력을 신임 할 수 없었던 사회 지도층이 만들어 놓은 일종의 ‘안전장치’ 라는 것. 이 설이 맞는다면 미국이 우리보다 민주주의 후진국이라고도 볼 수 있다.

두 번째 설은 오십 개 주에서 행해지는 투표를 관리할 기술력이 부족하던 낡은 시대의 잔재라는 것. 컴퓨터 등의 기술적인 지원이 되는 현 시점에서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더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국민 직선제로 왜 전환하지 않고 있는지 적지 않는 사람들이 불만을 갖고 있다 한다.

세 번째, 행정 독립성을 지키려는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선거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낸 결과. 친구 비키는 세 번째 설을 고등학교 적 ‘미국 정부 수업’ (US Government Class)이란 것 들을 때 정설로 배웠다 한다.

얼굴 붉히는 고성과 몸싸움이 오가고 ‘너 죽고 나 살기’식 음해성 정치공작까지 동원되는 살벌한 한국의 선거와 달리, 미국의 선거, 물론 뒤로 몰래 하는 일 까지야 알 길은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비교적 점잖고 고상하다.

오죽하면 민주당 오마바 후보는 좀 치고 박고 싸우라는 충고까지 들었을까! 미국선거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정책 대결’ 이다. 미국의 후보는 철저하게 그들이 내놓은 정책에 의해 판단을 받는다.

당과 지역을 초월하여 공동의 관심사인 경제 문제 빼놓고, 지금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정책 중의 하나인 의료보험(이하 ‘의보’)의 예를 들자.

민주당의 힐러리는 국민 "누구나 (Universal)" “의무적 (Mandatory)” 으로 들어야 하는 정부주도형의 의보를 주장하고, 같은 당 오바마도 힐러리처럼 강제력은 없지만 정부주도 또는 민영 중 국민이 자유로이 선택하여 역시 누구나(Universal)" 가질 수 있는 의보를 주장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 안들이 표심을 얻고자 급조된 정첵이 아니라, 나름대로 당의 전통과 철학에 근거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힐러리나 오바마의 의보 안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부의 재분배를 통한 사회정의를 실현 하자는 ‘가난한자’를 위한 당, 민주당의 이상에 부합한다.

반대로 ‘작은 정부’를 실현하여 ‘경제자유’를 보장하고자 하는, 결과적으로 부자의 이익을 주로 대변하는, 공화당 후보들은 힐러리 식의 정부주도 의보 안을 반대하여 자유시장논리에 근거한 현재 민영 의보의 틀을 유지할 것을 주장한다.

“중도 실용” 이란 애매한 명분으로, 이당 저당 날아다니는 당색 분명치 않은 한국식 ”정치 철새“ 후보들은 이곳에선 설 곳이 없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이 힘 못쓰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공화당 당색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근간인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도덕철학에 있어, 예를 들면 낙태와 동성애결혼 반대 등, 충분히 공화당적인 즉 ‘보수적’인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 매케인 후보가 '보수'라고 외치는 이유

현 공화당 일등주자인 존 매케인이 자기가 가장 보수적인 후보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다녀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론 같은 당 후보라고 모든 문제에 있어 다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순 없다.

각 정책마다 강경, 중도, 유연 등 입장조율을 통해, 물론 당의 기본철학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장 많은 표를 창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후보들의 정책들이 개인적 소신과 당 철학에만 근거한 것이라고 순진하게 볼일만은 절대 아니다. 정치인(Politician)이 달리 정치인인가!

미국 선거는 한국 선거보다 열배 백배 ‘돈 선거’ 인데 우리 것이랑은 많이 다른 의미의 돈 선거이다. 미국 50주를 전세기 타고 왔다 갔다 하며, 비싼 TV광고 통해 얼굴과 정책을 알리며, 선거 관리를 하는데 무려 빌리언 (Billion; 얼마더라?) 단위의 돈이 들어 간다나! 돈 떨어지면 가차 없이 바로 퇴장해야 하는데, 기부금에 있어 오바마에 밀리는 힐러리는 얼마 전 상당액의 빚까지 얻었다.

종전 한국에선 선거철 마다 '콩고물' 몇 푼 안 떨어지나, 공짜 식사는 없나 기웃거리는 분들이 꽤 있는 줄 안다. 최근엔 이런 분들이 법의 철퇴를 맞았다고 들었다. 미국 선거는 후보에게 돈 받는 선거가 아니라 ‘돈 내는’ 선거이다. 후보와 밥 먹으러 가도 200달러 이상의 기부금 겸 밥값을 내고 먹는다.

이런 몇 십 몇 백 달러 단위의 순수 기부자에게서 미국 민주주의의 희망을 본다. 참 한 가지 더 있다. 월가 골드만삭스 같은 큰 손 회사가 기부금 낼 때 몇 년 전의 우리처럼 ‘사과박스’에 넣어 몰래 주지 않고 온 천하가 다 알게 수표로 준다. 돈 선거만큼은 미국이 몇 년 전의 우리보다 선진국이 맞다.

■ 나종미 약력

나종미 씨는 1998 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프린스톤 신학교 기독교 교육석사, 유니온 신학교 신학석사를 마치고 현재 클레어 몬트 신학교 기독교교육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문화전문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