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채와 하품 사이에 낀 한국 예술영화의 맨얼굴욕망이 지퍼를 내리는 외도의 현장서 성경을 읽는 주인공위선적인 인간을 표현하는 그로테스크한 촬영기법 눈길

주말은 주중과 서울의 표정이 다르다. 서울은 주중에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주말에는 극장과 박물관에 인파가 넘친다. 물론 간간히 도로도 덩달아서 혼잡하다.

서울의 도로는 시위 군중과 이들을 뚫고 가는 자동차들로 덩달아 북적거린다. 주말에 홍상수 영화를 보러갔다. 집에서 오후 2시30분에 출발하였지만 정작 영화는 5시 45분에 상영하는 영화를 보고 12시가 넘어서 귀가하였다. 한 편의 영화 관람일정은 식사와 음주 시간이 포함되긴 하였지만 근 10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날 필자는 홍상수 영화 혹은 한국의 예술영화의 맨얼굴을 똑똑히 목격하였다. 그리고 홍상수의 텍스트보다 홍상수 영화가 상영되고 소비되는 기이한 상황이 훨씬 더 흥미로웠다.

사정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주말의 오후 충무로의 복합상영관인 대한극장을 찾아 홍상수의 <밤과 낮>을 보려고 했다.

복합상영관이며 홍상수 영화 개봉주이기에 당연히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매표소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매표소에 소개된 상영작은 <어톤먼트>와 <스파이더워크가의 비밀>같은 외국영화와 한국영화 <추격자>와 <바보>

가 상영되고 있었다. 흥행 성적이 좋은 한국영화는 두 개 관을 독점하고있었다. 대한극장의 11개관에서 홍상수 <밤과 낮>은 선택받지 못했다.

복합상영관에서 홀대 받은 영화는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환대받는 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광화문 씨네 큐브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서 1시간 30분을 기다린 다음 <낮과 밤>을 보았다. 객석은 관객 점유율 90%이상의 성적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상영 도중 10분에 한번 정도 폭소가 터져 나왔다. 관객은 복합상영관의 주력부대인 20대 관객보다 중년과 노년의 영화 매니아로 추정되는 관객과 대중성이 없는 영화를 골라보는 재미로 영화관을 찾을 것 같은 씨네필 분위기의 젊은 남녀가 대부분이었다.

극장문을 나서는 그들의 얼굴은 극기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초등학생 같은 만족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국영화 상영관의 양극화 모습을 눈으로 목격하는 하루였다. 대한극장에서 거절한 영화가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소수 관객들에게만 적극적으로 환대받지만 결국 산업의 낙오병이 되어 영화제작의 위축을 가져오는 순화구조가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홍상수, 김기덕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저예산 영화가 복합상영관에서 보다 많은 관객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한국영화의 양극화는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홍상수의 <밤과 낮>은 화가 김성남이 한국에서 대마초를 피우다 체포의 위협을 피해 프랑스로 도피하여 그곳에서 20대의 젊은 유학생과 연애하다 귀국하는 이야기다. 김성남의 프랑스 행적은 한인 화가들의 화실에 방문하여 고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밤에 한국에 있는 아내와 전화 통화가 전부다.

현지인의 만남과 한국의 아내와 통화 사이에 미술학교를 다니는 유정이 끼여들면서 화면의 긁힘같은 파격과 긴장이 조성된다.

성남은 우연히 만난 옛 애인과 정사를 나누려다 성경구절을 읊조리며 욕망에서 자유로워야한다고 역설한다. 욕망이 지퍼를 내리는 공간에서 성경을 읽는 성남과 동침하자는 여자의 간청은 홍상수식 아이러니와 그로테스크함의 전형이다.

여기서 홍상수 영화를 지지하는 관객들은 폭소로 화답하고 홍상수 영화를 난해하게 여기는 다수의 관객은 하품하게 된다. 이 지점은 관습적인 상업영화의 룰에서 벗어나 홍상수식 스타일로 이루어진 작가의 방 혹은 미로로 접어든다.

성남은 미술전공하는 유정에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같이 누워있고 싶다고 애걸한다. 유정을 뺨을 때리면서 정신차리라고 대항하고 저항한다. 하지만 성남의 반복된 감정의 고백은 유정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유정이 성남에게 “여자랑 사귀어도 유부남하고는 안사귄다”고 관계의 선을 그었지만 결국 두 사람은 동침을 하게 되고 마음이 서로 섞이게 된다. 유정이 이제부터 마음먹고 사랑을 하려는 순간 성남은 아내의 전화를 받고 서울로 떠나게 된다.

유정과 성남의 관계에서 감정의 부등호가 유정에서 성남으로 기우는 순간 성남은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거짓말로 서울로 향한다. 성남의 감정의 진정성은 여기서 전복되며 서울의 아내에게 행하는 언어를 통해 더욱더 강하게 의심하게 만든다.

하지만 프랑스로 도피한 화가가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라는 서사만 따라가면 홍상수 영화의 9할은 놓치고 말 것이다. 홍상수 영화는 서사의 전개보다는 아이러니하고 그로테스크한 현실의 상황을 카메라가 보여주고 위선적인 인간의 언행을 영화가 끄집어 올리는 일에 더 열심이다.

주인공의 위선과 현실의 그로테스크함을 보여주는 방식은 과거에 롱테이크와 불균질적인 편집스타일의 용기에 담아냈다면 <밤과 낮>은 롱테이크를 고수하지만 가까이 들어가는 줌인과 나오는 줌아웃 그리고 인물이 걸어가는 것을 뒤쫓는 팬과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틸다운 업을 사용하여 컷을 자르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카메라의 분주함은 고정화면의 단조로움을 해소하고 홍상수 감독의 컷과 컷의 연결에 대한 미학적 진전과 천착을 보여준다.

미학적 시도는 날짜를 자막으로 집어넣고 나레이션으로 주인공의 감정을 설명하는 시네다이어리적 방식은 기존의 홍상수 영화와 차별화된다.

어느 시인은 홍상수 영화를 볼 때 마다 인물들을 너트로 꽉꽉 조여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은 감정과 행동이 느슨하다.

하지만 그 나사풀린 행동과 감정이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현실의 맨얼굴을 드러내주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입증될때 관객은 뒤통수를 맞게 된다. 홍상수 영화의 인물들이 연애와 욕망이라는 텍스트에 너무나 오래 머물러있다는 사실은 경악스럽다.

우리는 남녀의 연애도 중요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보다 다양한 텍스트에 대한 매혹이 마음을 사로잡기도하다. 홍상수에게 여전한 기대의 시선을 던질 수 있는 것은 반복된 소재를 창조적으로 보여주는 실험정신의 건재함이다.

홍상수는 분명 아직 청년이다. 연애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고 청년의 정서며 형식의 실험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매진도 청년이기에 가능하다. 홍상수로 인해 한국영화는 조로의 길에서 벗어나 늘푸른 건강성을 유지하고있는 것이다.

■ 문학산 약력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현 세종대 강사, 영등위 영화등급 소위원, 한국영화학회 이사.저서 <10인의 한국영화 감독>, <예술영화는 없다><한국 단편영화의 이해>. 영화 <타임캡슐 : 서울 2006 가을>, <유학, 결혼 그러므로 섹스> 연출.


문학산 cinemh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