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적 모습 없어… 친절한 진료에 마음 푸근비싼약 대신 샘플약 한 달치 공짜로 주고진료 부위 외에 다른 질병 덤으로 봐줘… 내가 겪은 경험이 단지 운이 좋아서일까

미국 메디컬드라마 '하우스'
지금 미국에는 병원을 무대로 한 메디컬 드라마들이 인기리에 방영 중인데, ‘그레이스 어내터미’ (Gray's Anatomy), ‘하우스’ (House) 그리고 ‘이알’ (ER) 등 언뜻 생각해도 무려 세 개가 넘는다. 내 친구 하나는 ‘그레이스 어내터미’가 방영되는 시간대에는 아예 전화조차 안 받을 정도로 이 드라마에 푹 빠져 산다.

피 보는 일을 밥 먹듯 하며, 살까 죽을까 노심초사 스트레스 팍팍 받을 것이 분명한 병원 얘기에 왜 저리들 열심인지 호기심이 발동하여 시청자 대열에 합류한지 일 년여가 된 지금은 이 드라마 인기몰이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즉, 거기 나오는 인종도 다양한 미국 의사들 (‘산드라 오’라는 한국계 여배우도 의사로 나옴) 모두 예외 없이 아주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랑하고, 울고 웃고, 아파하고 고뇌하는 의사들, 심지어 이지라는 신생아 수술 전공 여의사는 한 소년의 눈물어린 호소 때문에, 그리고 꺼져가는 한 생명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차에 치여 실려 온 사슴에게 응급 소생술을 시도하는, 그것도 수명의 수련의들이 쭉 둘러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좀 어처구니없지만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인간적인 의사가 먹혀 들어가는 이런 현상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첫째 인간적인 미국의 의사들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둘째는 거꾸로 인간적이지 않은 미국의 의사들 때문에 상처 받은 미 대중의 인간적인 의사에 대한 갈망을 반영한다.

미국 살며 그 동안 내가 만난 의사들 다 세어 보면 열 손가락을 넘지 못하고, 그나마 잔병치레만 해오면서 소위 명의로 이름 날릴 일 없을 ”가정의“들만 주로 봐 온 까닭에, 이렇게 제한된 숫자와 종류의 경험만을 가지고 미국의 의사들 이렇더라고 말하는 것 ”장님이 코끼리 더듬기“ 식의 얘기가 되기 쉽겠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미국 의사들, 특히 내가 한국에서 보아왔던 역시 제한된 수의 의사들에 비해, 많이 인간적 이었다.

십년 전 한국에서 오른 쪽 엄지와 검지 사이에 난 편편성사마귀를 제거하러 들렸던 우리 집 근처 모 종합병원 소속의 피부과 의사.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유난 떤다“며 어찌나 퉁명스레 핀잔을 주던지, 그것도 사정없이 반말을 해가며, 그만 치료 자체를 포기하고 유학길을 나섰던 적이 있다. 그 후 비싼 미국 병원에 갈 길은 없고, 점점 자라 가는 그 징그러운 사마귀를 바라보며 무려 몇 년을 두고두고 그 의사분을 원망했던 적이 있다.

이런 식의 오만한 권위주의적 환자 다루기는 좀 극단적인 경우였는지도 모르겠으나, 한국에선 의사들은 우리 환자들과는 뭔가 격이 다른 ‘종류’의 사람들 인가보다 라는 왠지 모를 거리감을 자주 느끼곤 했었는데, 이런 나의 느낌이 순전한 피해망상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보다 훨씬 덜 예민하신 우리 어머니, 무뚝뚝하고 환자 무시하는 한국의 의사들에게 평생 동안 얼마나 질리셨는지, 서툰 시술로 자신의 멀쩡한 생 이빨 몇 개를 망가뜨린 한 여의사분을 ”친절, 상냥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그러이 용서하신 것을 보면 말이다.

한데, 내가 이곳 미국 땅에서 만났던 의사들은 의술이라는 전문분야를 가진 그냥 평범한 직업인들이었다.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느껴지곤 하던 그런 권위의식이나 거리감 같은 것이 이들에게선 안 느껴지는 것이었다. 물론 딱히 꼬집어 예를 들어가며 이런 나의 느낌을 정당화하기는 힘들다. 진료 받으면서 그냥 피부로 느껴졌던 것이니까. 하지만 내가 만난 이곳 의사들의 ‘인간적인’ 면면을 굳이 증명하라면 뭐 못할 것도 없다.

동부의 리치몬드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고질병인 계절성 알레르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 의사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갔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 격으로 바로 그 전 달까지만 해도 잘만 되던 보험적용이 그 특정 약에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 알에 삼천 원하는 약을 생돈 주고 사야 할 돌발 상황에 놀라 처방전을 써 준 의사에게 전화를 했다. 전후 사정을 들은 그분 잠시 누군가에 뭔가를 물어보는 듯 하더니 나보고 자기네 병원으로 다시 와달라는 것이었다.

진료중인 미국의사

새 처방 전을 주나 보다 하며 영문도 모르고 간 병원에서 병원용 샘플로 나온 동일제품 무려 한 달 치 이상을 박스째로 (이십만 원어치는 족히 됐을 것) 안겨주는 것이었다. 어찌나 눈물 나게 고마웠던지!

현재 살고 있는 클레어먼트에서 약 일 년 전에 있었던 일. 모처럼 몸 보신 좀 하겠다고 갈비 양념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일주일도 넘게 상한 줄도 모르고 마냥 먹다가 그만 식중독에 걸린 적이 있다.

참고 또 참아 가려움증이 거의 사그라졌을 무렵에야, 그것도 마침 꼭 받아야만 했던 다른 진료가 있어서야 병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중국계 여의사분, 괜찮다는 나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때 늦었지만 식중독에 관한 검사와 진료도 본 진료에 덤으로 얹어 해주었는데, 그분 말에 따르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 예를 들면 ‘여성건강진단’ 이라는 명목 하에 묶어서- 해줄 수 있었던 일이란다.

해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보험회사랑 성가신 마찰을 겪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까닭으로 모든 의사가 다 기꺼이 해주는 일이 아닌 것을 잘 알았기에, 그 배려가 참으로 고마웠던 적이 있었다.

이런 종류의 인정미 넘치는 배려가 이곳에서 일반적인 일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 의사들, 빡빡할 때는 한없이 빡빡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환자 처리 시, 한국에서 흔히 있다는 의사와 환자가 ‘짜고 치는 고스톱’은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없다고 봐도 되겠다. 한국에서 온지 몇 달 안 된 인근 어느 한인교회의 지휘자 한분이 청년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가는 길에 누군가의 차에 받히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경찰이 오면 무조건 엄청 아픈 척하라”고 사전교육까지 시켰지만 미국에서 자란 청년들이 그 말을 들었을 리가 없어 곧이곧대로 별 아픈 데가 없다고 진술을 했고, 안되겠다 싶었던 이 지휘자분 병원응급실로 거의 우격다짐으로 쳐들어가 아파 죽는다고 생쇼를 했던 모양이다.

이런 땡깡이 이곳 미국 땅에서 통할 리가 없어, 그 분 등판을 몇 번 두드려 본 의사가 그냥 가라고, 그리고 정 아프면 나중에 동네 병원에나 가보라고 해서 일없이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에선 미미한 교통사고라도 최소 삼주 입원 진단은 나온다던데, 여기선 교통사고로 실신했다 깨어나더라도 그냥 가라고 하기가 일쑤라는 것 그 지휘자분 미처 몰랐을 것이다.

한건에 삼천 원 받는 한국의 의사와 삼십만 원 받는 미국의 의사의 서비스의 질을 비교하는 것은 어쩌면 공평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하루에도 두, 세 탕을 뛰는 월급 의사들이 적잖이 있는 것을 보면 미국의 의사라고 다 떼돈 버는 것은 아닌 듯하고, 게다가 어찌하다 손끝하나 잘못 놀려 소송이라도 당하면 전 재산을 날릴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엄연한 이곳 현실이라 (미국 의사에게 소송대비 보험은 필수!) 미국의 의사가 한국의 의사보다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 있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미국 땅에 살며 이곳 의사들과 안 좋은 경험을 하신 한국 분들도 적잖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 동안 억세게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한국에서건 미국에서건 인간적인 의사 만나기가 ‘운’이 아니라 당연한 ‘현실’인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넘치는 후한 인정까지야 매번 바랄 수 없겠지만, ‘서비스직’이란 본질에 충실한 ‘직업인’ 의사와의 만남 정도는 매번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 나종미 약력

나종미 씨는 1998 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프린스톤 신학교 기독교 교육석사, 유니온 신학교 신학석사를 마치고 현재 클레어 몬트 신학교 기독교교육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문화전문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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