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미술이 만나다'1890-1940/1945-2000 임석재 지음 / 휴머니스트 / 각권 19,000원차근차근 음미할수록 제맛… 대작업에 땀을 쏟은 저자 열정에 높은 점수

미리 언질을 주자면, <건축과 미술이 만나다>는 빨리,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차근차근 음미하듯 읽어야 할, 다소 진도가 더딘 저술이다. 애초에 저자 자신부터가 쉽게, 대강 써내지 않았다.

본인의 전공분야인 건축사의 방대한 지식과 자료를 기반으로 미술에 대한 집요하고도 세밀한 접근 및 분석의 시간을 거친 흔적이 역력하다. 광범위한 건축 및 미술사의 지식을 풀어놓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장르간 교차 해석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이다. 타 장르에서도 흔히 시도되는 장르와 장르간의 병합이면서도, 기존의 연대기별 나열법, 또는 ‘세트’식 종합 방식과는 전연 다른 시도다. 건축과 미술을 한데 꿰는 통사적이고도 섬세한 교차해석의 저작으로서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사례로 특히 의미가 깊다.

일례로, 입체파 미술사조는 당시 건축양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상관성이 있기는 있는걸까?

저자는 입체파가 추구한 미적 본질을 파고들며 이후 건축 양식들과의 짝짓기 또는 차이점을 추적한다. 즉, 입체파적 세계관이 가장 집약적이고 완성도 높게 나타났던 피카소, 브라크 시대의 회화 작품을 선두에 세운 뒤 이들 입체파가 추구한 주제를 지적한다.

입체파의 상대성은 시간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문제에서 출발해 장르별로 다양하게 구체화되었으며, 그 핵심으로 우주와 인간, 사물의 존재상태가 ‘시간과 공간의 상호 작용에 의한 연속적이고 유동적 변화’라는 것에 있었음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이것이 일련의 연쇄적인 연결고리를 타고 넘어가면서 결국 건축의 장르까지 흘러가 닿으면서 도리스식-이오니아식-코린트 식이라는 3대 양식에 이르는 영향을 미치게 됨을 각종 자료 등을 예시하며 보여준다.

책은 20세기 전반부의 50년, 후반부의 50년을 단위로 하여 나뉘어져 있다. 1890년에서부터 출발해 1940년에서 1권을 일단락지은 것은 모더니즘 운동과 맥락을 함께 한 미술 및 건축사조의 흐름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1945년-2000년판은 2차 대전 이후의 현대예술 전반을 조망하고 있다. 일부는 건축이 중심으로 부각되기도 하고, 일부는 미술이 주도적 역할로 강조되기도 한다.

물론 건축과 미술이라는 두 장르간에 완벽한 일치 또는 연대가 이뤄지지 않는 시기도 발견된다. 그러나 이 역시 그 시대가 지닌 고유의 시대특징으로 간주하는 한편, 역으로 차이점과 그 배경에 저자는 확대경을 들이대기도 한다.

잦은 전문용어 등으로 인해 읽기가 다소 까탈스러울 수는 있지만, 그만큼 주어지는 지식과 상식의 두께도 만만치 않다. 한국 최고의 건축사학자로 이름난 저자의 명성에 걸맞게, 각 사조가 추구했던 예술적 고민, 문명에 대해 취했던 각 사조의 입장 등 다각도로 심도있는 해설을 싣고 있다.

평소 건축 또는 미술 한쪽에서만 볼 때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들과 다수 만날 수 있다. 내용중 언급된 건축가나 미술가들의 생애 등에 대한 간략 해설도 짧으나마 유익하다.

<건축과 미술이 만나다>가 가진 또다른 덕목은 국내 출간서, 특히 학술서의 상당수가 외국 원작의 번역물로 채워진 국내 출판시장의 현실을 감안할 때 더욱 값지다. 이같은 대작업에 땀을 쏟은 저자의 열정에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역사는 물론 각 시대별 유명 미술작품들과 건축물들을 다수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