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석영중 지음/ 예담/ 13,000원평생 빚에 허덕인 천재문학가… 유수한 걸작속에 채무자로서의 심리궤적 엿보여

『도스토예프스키는 베풂의 메커니즘을 역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적용한다. 간단히 말해서 가난한 사람도 역시 베풀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인간은 돈이 없어도, 아니 없기 때문에 더욱더 남에게 돈을 쓰고 싶은 욕망으로 시달린다. 베풂은 그의 가난을 포장해준다. 일시적이나마 없음을 잊도록 도와준다.』

『 부자는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돈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유독 자존심을 중시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이후에 쓰인 많은 소설들에서 가난한 사람의 자존심을 여러 각도로 고찰한다. 베풂의 메커니즘과 짝을 이루면서 경제학이 다룰 수 없는 인간 심리의 깊이를 드러내 보인다』

저자의 심리분석이 자못 날카롭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는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를 새로운 시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후대의 세계적 명성과는 달리 평생 빚에 시달리며 때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도박에 손을 대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같은 ‘채무자’로서의 정서적 탈출구 또는 자격지심이나 복수의 배출구로 글을 쓴 한 위대한 문학가의 세속적인 행보를 상세지도처럼 훑어내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미성년>,<도박꾼>,<죄와 벌>,<백치> 등 기존 걸작별로 나누어 각 작품마다 등장하는 인물 구성과 성격, 세부 텍스트 등을 중심으로 문자 속에 숨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본질적으로는 비난도, 비판도 아닌 한 천재작가의 불운한 환경과 이로 인한 심리적 반사작용을 섬세하게 되짚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익히 알려진 고전을 다시 접하는 재미와 함께 저자의 예리하고도 경쾌한 해설이 강도높게 독자를 끌어들이는 책이다.

일례로, 자신과는 달리 동시대의 부유한 귀족출신 문학가였던 투르게네프와 갑자기 불편한 사이가 되어 일방적인 적대감을 보이게 된 내막 등을 도스도예프스키의 돈 청탁 편지 전문과 전후의 행보, 저변의 심리적 분석과 이를 뒷받침하는 관련 작품내용 등 풍부한 자료와 논리를 근거로 ‘도스도예프스키 다시 읽기’를 안내한다. 특히 저자의 독특한 필치는 적지않은 힘이다. ‘빚진 놈이 큰소리친다는 말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바로 이 ’빚진 놈‘의 행동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등 직설적이면서도 위트있는 해설법이 본문 군데군데에서 반짝인다. 저자 석영중은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학부와 대학원 강의를 통해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고 공감하며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은 현장 경험을 이 책에 되살려 담았다.

숭고한 고전으로만 알고 있던 대 작가의 작품이 기껏 ‘돈’에 대한 집착 또는 증오 등에 얽힌 부산물이었다고 생각하면 적잖은 실망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같은 속물적인 배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뛰어난 작가에 대한 연민과 문학적 애정, 그리고 천재성에 대한 숭배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현대사회 역시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자화상 때문인지 모른다.

저자 역시 빚쟁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속물적 삶의 해부에서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화려하게 박제된 문학가가 아닌 본질적인 인간적 교감을 우리에게 타전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저자 본인이 정의한대로 ‘도스토예프스키가 돈과 사람, 사회를 정확하게 읽어낸 사람’이었다면 저자 역시 그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세속적 고통의 무게와 방출방식을 정확히 읽어낸, 몇 안되는 주변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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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