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의료비에 보험료도 큰 부담… 병원 문턱이 너무 높다

큰 수술 한 번 받은 적 없이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온 내게도 평생 시달린 고질병이 서너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편도염이다. 며칠 전 자고 일어나니 양쪽 편도가 부어올라 침 삼키기조차 힘들었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번 당하는 일이 아니라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이번엔 더욱 여유만만 했다.

이유인즉 지난여름 한국에 갔을 때 막내 여동생의 편도염약 일주일 분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곳에서 적어도 이삼십만 원 들어갈 일을 단돈 ‘일만 원’ (한국에서 막내가 낸 본인 부담금+ 약값)에 가뿐히 해결했다. 어찌 간단한 염증치료 하나에 이삼십만 원이란 거액이 들어가야 하는지 의아해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미국의 보험은 각자의 ‘능력’과 ‘필요’에 따라 개인이 사는 사보험이 기본이다. 가격에 따라 그 혜택도 천차만별이라 수학 공식 풀듯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기에 내가 들었던 보험을 예로 설명하자면 대강 이렇다.

■ 부담 백배의 보험료

내가 지난 삼년간 가지고 있던 보험은 일인 기준으로 일 년에 팔십만 원 하는 것이었는데 이곳 시세로는 아주 싼 편에 속하였다. 이전에 미동부에 있을 때는 한 달에 무려 십팔만 원씩 내야 했었다.

나처럼 싱글인, 이곳 일반인 친구 하나는 한국 돈으로 약 이십육만 오천 원씩을 매달하고 있다. 아무튼 연 팔십만 원짜리 보험을 이용하여 이곳 병원에 간다고 하면 병 한 건당 "디덕터블" (deductable)이라는 일종의 본인부담금 십만 원을 내고, 코페이(Co-pay) 라는 또 다른 종류의 본인부담금 삼만 원씩을 병원 방문시마다 내야한다.

여기에 일주일 분 항생제 값을 이십만 원 정도로 잡는다고 해도 이것의 본인부담금 십만 원까지 해서 약값이 장난이 아니다. ‘한 알’에 이삼십 만원하는 비싼 항생제도 수두룩하다.

합하여 이십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만일 보험회사와 아무런 연고가 병원을 간다면 잘해야 진료비의 80% 정도도 커버 받기 힘들다.

■ 100% 의지할 수도 없는 의료보험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곳 사람들은 아주 심하게 아프지 않는 한 병원에 가지 않는다. 한국에서처럼 감기만 걸려도 병원 가는 일은 적어도 여기에선 없다. 그래서인지 비타민C농축액이 감기약인 미국인들이 아주 많다. 평소 웬만한 잔병치례에는 별로 도움 되지 않는 보험이지만 큰 병이 났을 때는 거의 생명줄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한 달 십팔만 원씩 하는 낸다는 아까 그 친구는 내장기관 일부를 들어내는(맹장수술보다 약간 큰) 수술을 받았었는데, 보험회사가 입원비까지 합쳐 일억 원 넘게 나온 병원비 전액을 커버해주었다. 그 친구는 지금까지도 보험회사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다닌다.

의료비가 천문학적으로 비싼 미국 땅에서 의료보험은 생존을 위한 ‘필수’ 항목이지만 보험을 갖고 있다고 해서 꼭 안전한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젊은 미국 여자가 수술 후 염증 등의 부작용으로 재수술을 해야 했는데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수술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급해진 환자보호자측이 TV 인터뷰 등 여론을 동원하여 압박하자 겨우 보험회사 승인이 떨어졌는데 이때는 이미 환자가 유명을 달리한 후였다.

■ 무보험으로 사는 사람들

사람 생명을 좌우하는 의료보험. 하지만 비싼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무보험으로 사는 미국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사실은 나도 그중의 하나다. 유학생에게 의료보험은 필수이다. 보험서류 없이는 학교등록조차 되지 않는다.

지난 가을 보험 회사가 바뀌면서 일인 기준 일 년 팔십 만원하던 보험료가 백오십만 원으로 거의 두 배가 되었지만 혜택은 훨씬 더 줄었다. 예를 들면 병 한 건당 첫 의료비 전액을 내야하고, 일정액이 넘어가거나 같은 병으로 다섯 번 이상 병원을 갈 때는 아예 혜택이 없다.

이 보험으로 병원 가서 눈 밑에 자라는 작은 물혹 정밀검사를 받은 내 친구 베티는 얼마 전 사천달러짜리 고지서를 받고 한번 기절했고, 이것보다 더 많이 나올 두 번째 검사 고지서를 기다리며 공포에 떨고 있다. 나는 비싸기만 한 학교보험을 취소하고 대신 한국에서 파는 사십만 원짜리 여행자보험을 샀다.

큰 돈 드는 병이 났을 때는 대책 없는 짓인 줄은 알지만, 당장 학교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많은 손해를 보고 ‘손 떼고’ 나갔다는 이전 보험사가 한없이 원망스러웠지만, 그들도 땅 파서 장사하는 것은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손해 보게 하는 환자들을 받아줄 보험 회사가 없다는 얘긴데 정말 한 여름 남량 공포 영화가 따로 없다!

■ 정부지원 의료보험 메디칼

‘돈 없으면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야 하나?’ 그건 아니다. 극빈자(일이인 가족 기준으로 연소득 천삼백오십만 원 미만)들은 메디칼이라는 정부지원의료보험을 이용할 수 있다. 미국 사는 딸 덕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엉겁결에 영주권을 장만한 어떤 이는 이 메디칼 덕에 우연히 발견된 피부암 수술을 거의 공짜로 받았다고 한다.

하루 종일 기다리는 것이 흠이지만 심지어 영주권이 없는 우리 같은 가난한 유학생도 이용할 수 있는 정부지원대학병원도 있다고 한다.

돈의 유무에 따라 나름대로 살길이 있는데, 대책이 없는 것은 중간에 ‘낀’ 인생들이다. 이십대의 싱글 맘이 열심히 일해서 극빈자 수준을 겨우 벗어났는데, 보잘것없지만 아무튼 늘어난 연 수입 때문에 메디칼 혜택을 받을 자격을 상실하여 아이 병원도 데려가지 못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쯤 되면 일부러 돈을 벌지 않고 놀면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겠다는 사람들이 나올 법도 하다.

■ 한국이 미국보다 나은 것 하나

이번 미국 대선에서 의료보험이 가장 중요한 공약 중의 하나로 등장했는데 당연한 일이다. 의료보험제도를 개혁하겠다는 후보는 여자든 남자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당에 상관없이 무조건 찍겠다고 공언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동안 관리부실 시비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한국이 미국보다 확실히 나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의료보험제도가 아닐까 한다. 한국의 그 좋은 보험 ‘남용’하지 말고 세월 좋을 때 아끼고 보존 보완하여 자손만대에 물려주길 바란다!

■ 나종미 약력

나종미 씨는 1998 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프린스톤 신학교 기독교 교육석사, 유니온 신학교 신학석사를 마치고 현재 클레어 몬트 신학교 기독교교육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문화전문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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