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제작비용·높은 시청률 무기로 편성 봇물관음주의 부추긴다는 비판도

“알렉스 너무 멋있지 않아?”

“걘 너무 느끼해. 투덜거리면서도 마누라 말 다 들어 주는 앤디가 최고야.”

각종 모임자리가 많은 5월,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우리 결혼했어요’로 화제를 돌려보라. 각종 이야기로 두세 시간은 그냥 지나간다. 젊은 시청자 사이에서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한 일간지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주제로 칼럼을 싣기도 했다. (중앙일보 분수대 ‘우리 결혼했어요’)

■ 저렴한 비용에 높은 시청률

최근 방송가는 ‘우리 결혼했어요’와 같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대세다. 2000년대 중반 <도전 신데렐라 만들기> <아찔한 소개팅> <리얼 스캔들 러브>등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인기를 모은 리얼리티 쇼는 이제 지상파까지 섭렵했다. KBS <해피선데이>의 코너 ‘1박 2일’, SBS의 <일요일이 좋다>의 ‘체인지’는 물론 얼마 전 100회를 맞은 <무한도전> 역시 프로그램 컨셉트로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내세운다.

케이블 텔레비전까지 영역을 넓히면 리얼리티 프로그램 수는 훨씬 늘어난다. 코미디 TV의 <애완남 키우기 나는 펫> ETN의 <계약동거> 온 스타일의 <도전 슈퍼모델>과 스토리 온의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 등 제작 프로그램에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 <심플라이프> <미운오리 백조되기> <어프렌티스> 등 외국 프로그램까지 합하면 줄잡아 수십 편이 방영 중에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작진들은 우선 비용 대비 높은 성과를 꼽는다. 초대형 경품이 걸린 외국의 리얼리티 쇼도 드라마 제작비의 절반도 안 되는 비용으로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 수 있다. 대형 세트나 초대형 스타를 출연진으로 하지 않는 국내 방송 환경에서는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제작이 가능하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든 모 케이블TV의 PD는 “제작비는 출연자와 케이스마다 달라 산술적으로 답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으로 약 1/10정도까지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프로그램 포맷의 다양화다. 방송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이에 따라 매체 수도 늘었다. 다 매체화로 인해 콘텐츠 수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면서 새로운 시각의 콘텐츠가 필요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한국언론재단 박주연 연구원은 “더 이상 연예인들의 보여주기만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힘들기 때문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밖에 시청자와 공감대 형성이 용이하고,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에서 검증 받았다는 점도 제작과 편성의 이유가 되고 있다.

■ 리얼과 판타지가 교차하는 리얼리티쇼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리얼리티 쇼’ 유럽에서 ‘진실의 텔레비전’으로 불린다. 일반적으로 영국의 <크라임 워치 UK>(BBC1, 1984년 제작)와 미국 시나리오 작가의 대 파업 때 생겨난 NBC의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1987년 제작)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효시로 꼽는다. 주어진 현장을 그대로 포착해 보여주는 이 방식을 1세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 부른다.

일반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리얼리티 쇼’ 형태의 프로그램은 2000년 CBS의 <빅 브라더>와 <서바이버>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부터다. 이어 폭스사의 <템테이션 아일랜드> <아메리칸 아이돌> ABC의 <누가 백만장자 되기를 원하는가> NBC의 <체인즈 오브 러브> 등 경쟁적으로 리얼리티 쇼를 만들었다. 이들 방송은 보다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속성을 드러낸다.

국내 인기를 모으고 있는 리얼리티 쇼는 이 2세대 리얼리티 프로그램 포맷을 갖추고 있다. 폐쇄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출연자들이 연출해내는 행위와 관계 변화의 추이를 보여준다. ‘신혼 생활’ ‘동거’ ‘명문대학 학생 생활’ 등 설정된 상황에서 출연진은 사건과 해프닝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한다. 이때 편집이 가미되며 새로운 가상현실을 만들어 낸다. 리얼과 판타지의 교차다. 출연진은 각자의 캐릭터를 만들어 프로그램에 재미를 가한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를 예로 들어보자. 네 커플의 스타연예인은 2 주일에 한 번 신혼부부로 살아간다. ‘김치 담그기’ ‘사랑의 도시락 만들기’ 등 미션을 수행하며 스타 신혼부부는 일거수일투족을 공개한다. 시청자들은 엿보기를 통해 자신의 체험을 빗대 공감하게 된다.

물론 네 커플은 각자의 컨셉트를 가진다. 지난 주 하차한 ‘신애-알렉스’커플이 로맨틱한 신혼의 로망을 보여주었다면 ‘사오리-정형돈’ 커플은 권태기를 겪는 현실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여줘 ‘천만 안티’를 만들기도 한다. ‘서인영-크라운 제이’커플, ‘솔비-앤디’ 커플은 각각 섹시와 귀여운 커플의 전형을 보여준다.

kbs 2tv <해피선데이> 1박2일

스타가 설정된 상황에서 스토리를 만들고, 프로그램 속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구조는 케이블 텔레비전의 <카이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카이스트라는 특정 상황 속에 서인영을 던져놓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편집 재가공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조연으로 나오는 카이스트 학생들은 호감가는 외모와 독특한 캐릭터로 뜻밖의 쾌감을 선사한다. 매거진 t의 차우진 기자는 “이를 테면 <카이스트>는 리얼리티 쇼라는 불변의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캐릭터가 특수한 상황 속에서 빚어내는 촌극, 이른바 시트콤에 가까운 쇼”라고 평했다.

물론 봇물처럼 쏟아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도 적지 않다. 우선 대중의 관음성과 이에 따른 사생활 침해문제다.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이종수 교수는 “프로그램 특성상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출연진의 행동 엿보기와 관찰, 오락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문화장르가 지닌 윤리성에 대해 재고할 기회를 준다”고 말했다. 충남대 신문방송학과 김수정 교수는 “자발적 시민단체의 감시와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을 공론화해서 법적 또는 윤리적 지침을 분명히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또 하나의 지적은 프로그램의 글로벌화다. 국내의 성공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해외의 프로그램들을 수입해 방송하거나 해외 리얼리티 프로그램 포맷을 모방한 프로그램이다.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이종수 교수는 “이들 프로그램의 대량 생산과 유통은 초국가적 문화산업이나 방송사에 의해 주도되고 지배되기 때문에 상업적 이윤추구의 도구로 전락한다고 지적되었다”고 밝혔다.

이 모든 장벽(?)에도 불구하고 국내 리얼리티프로그램은 성공을 거두어 왔다. 리얼리티 TV장르분석의 대가 킬본(Kilborn)은 “사실성 프로그램 양식과 허구적 재연의 혼합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하나의 탈출구로 성장,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