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풀한 창법' 살아 있었다

1969년은 두 명의 남녀로 인해 한국사회가 뜨거워졌던 해다. 영국의 미남가수 클리프 리차드가 내한해 한국 여성의 심장을 사정없이 유린했던 그 해에 남성들은 '김추자'라는 역대급 섹시 여가수의 등장에 정신 줄을 놨다. 이후 그녀는 '섹시 댄싱퀸'으로 등극했고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상찬으로 규정되었다. 야릇한 그녀의 춤사위와 팔색조의 노래 가락이 오죽 좋았으면 '돌부처도 돌려세웠다'는 불경한 말까지 나돌았을까.

33년 만에 컴백한 김추자는 올 상반기 대중음악계의 빅뉴스 메이커로 떠올랐다. 소장하고 있는 수 십장의 그녀 LP들 중 잘 듣지 않았거나 기억이 가물가물한 노래들까지 살뜰하게 들어보았다. 천하의 김추자도 모든 노래가 좋지는 않았다. 지루한 노래도 있었다. 헌데 유독 감흥을 극대화 시키는 작곡가의 노래가 있다. 신중현이다. 그녀의 음색, 창법은 신중현이 창작하고 연주한 노래에서 최상의 감흥과 울림을 낸다. 다음은 이봉조 정도. 김희갑의 곡들은 왠지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옷 같았다. LP들을 다 들은 후 신보를 들어보았다.

설렘과 우려가 교차된 복잡한 마음으로 첫 트랙 '몰라주고 말았어'를 듣기 시작했다. 헉. 뭐지 이 숨이 막히는 이 포스와 넘치는 끼는. 엄청나게 록킹한 창법과 사운드는 내가 기억하는 김추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마치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토해내는 사자후 같았다. 예전에 김추자의 창법과 음색은 비음과 함께 섹시함이 강했다면 지금은 소리가 두껍게 변했다. 피해갈 수 없는 나이 탓이지만 더 묵직하고 파워풀해졌고 넘치는 끼도 여전하다. 이런 뜨거운 열정과 끼를 껴안고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견뎌냈을까!

그녀는 상당기간 칼을 갈아가며 컴백을 준비해온 것이 분명하다. 근래에 뜨거운 열정과 응어리진 한과 짙은 소울을 이렇게 강력한 기운으로 토해내는 여가수의 음반을 들어본 적이 없다. 피부 구석구석 소름이 돋는 이 느낌은 참말로 오랜만이구다. 사실 김추자 신보를 디지털음원으로 처음 들었을 때, 과거와 다른 록킹한 창법에 살짝 혼란이 와 CD로 들어본 후 에 최종 판단을 하리라 유보했었다. CD로 전곡을 들어보니 대박이다.

그녀는 낯설고 새로운 음악적 실험보단 자신이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을 익숙한 사운드라는 편안한 옷을 입고 들려준다. 현명한 선택이다. 33년의 공백을 가진 자신이 어떻게 노래를 해야 될지를 분명하게 알고 준비했음을 증명한다. 놀라운 경험 하나. 새벽 늦게까지 노래를 듣다보니 정신이 몽롱해서 생긴 현상인가? 신보 타이틀 '몰라주고 말았어'를 부르는 가수는 김추자가 아닌 신중현으로 들리는 착각을 일으켰다.

김추자의 노래들은 여전히 탄력 있는 목소리를 통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강한 강력한 그녀의 카리스마를 경험시켜준다. 한국 고전 록의 질감을 구현한 송홍섭, 한상원, 정원영, 배수연 등이 만들어낸 밴드 사운드의 힘도 언급할 만하다. 원 테이크 녹음으로 라이브의 느낌을 살린 9곡이 수록된 신보는 그녀에 대한 모든 우려를 날려버리는 강력한 훅 한 방으로 판명이 났다. 그녀를 기억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중장년층과 그녀를 왕년의 트로트가수로 정도로 생각했던 젊은 세대 모두에게 축복 같은 음악선물이다.

우리나이로 64살의 고령이고 30년 이상 활동하지 않았기에 품었던 그녀에 대한 우려는 기우였다. 비록 목소리 톤은 굵어졌지만 어떻게 이런 뜨거운 열정과 끼를 숨기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인내하면서 살 수 있었을까 싶다. 그녀의 노래 속에는 무대에서 노래하고픈 그녀의 갈증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거의 참을 수 없는 수준의 고통이었을 것 같은 간절함이 배어있다. 컴백설이 번번이 무산되는 가운데도 오매불망 기다렸던 우리의 간절함이 그녀의 신보를 들은 후 왠지 초라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컴백을 가장 애타게 기다렸던 사람은 우리가 아닌 김추자 그녀 자신이 아니었을까. 노래 실력은 오히려 파워풀해졌음을 확인했으니 이제 궁금한 것은 컴백무대에서 '섹시 댄스퀸의 원조'라는 찬사에 어울리는 '퍼포먼스'도 가능한지 여부 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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