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선곡… '진짜 음악' 감탄사!

2014년 5월 13일 자정. 인천에 소재한 경인방송에 음악평론가가 진행하는 전문 음악 라디오방송이 조용하게 부활했다. 음악평론가 성우진이 진행하는 ‘한 밤의 음악여행’이다. 진중한 국내외 록 음악을 중심으로 월드뮤직에다 국내 인디음악까지 소개하는 이 방송에 대해 CBS 라디오 DJ인 남궁연은 “선곡이 살벌하다”고 감탄을 했다.

성우진은 한국 록과 해외 팝음악에 있어서는 무림의 최고수다. 어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기똥찬 노래들이 흘러나오는 그의 방송은 전문음악인들의 사랑방이 됐다. 송명하, 고종석, 김성환, 배영수, 박국환등 음악평론가는 물론이고 헤비메탈밴드 크럭스의 드러머 신영,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 이솔이는 거의 매일 들어오는 음악인들이다. 방송을 시작한 지 2달이 지나 만난 그는 행복해보였다. “스튜디오가 작은 주조라서 동선이 양손에 컨트롤이 되는지라 마치 제 방 같은 아늑한 느낌에서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음반수집가이자 저명한 칼럼리스트였던 선배 DJ 전영혁은 인생의 롤 모델이다. 방송작가협회 정회원인 그는 방송작가로도 유명했다. “20대에 음악업계에 들어가면서 월간 팝송 편집장이었던 전영혁 선배가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죠. 가슴 속에 오래 묵은 한이 있었습니다. 보통 아나운서들은 진행을 잘 하지만 제가 써준 원고를 읽는 것에만 그치는 한계가 있어 답답했습니다. 일일이 디테일한 내용을 써줄 수가 없어 내가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DJ의 꿈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성우진의 방송이력은 화려하다. 1989년 불교방송에서 게스트로 방송을 시작한 그는 음악프로그램 ‘영화음악실’을 일주일 동안 진행했었다. 인터넷 방송 아임스테이션에서도 ‘록킹 아지트’ 진행을 하며 밴드 넬을 발굴해 인디 1, 2집 제작에 산파역할을 했다. 월간 핫뮤직 편집장시절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단발 게스트로 출연했던 그는 ‘밤의 디스크쑈’에서 처음 고정 코너를 맡았다. 유명해진 프로그램은 ‘신해철의 FM 음악도시’. 고정 게스트로 출연한 그 방송에서 신해철은 시장, 성우진은 헤비메탈을 많이 틀어준다고 해 ‘두부요동당 당수’로 불렀다. 그때 게스트가 유희열, 김장훈, 이승환 등등 모두 연예인들이라 청취율이 엄청나게 높았다. 위성DMB ‘키스’에서 처음 만나 2년 전부터 전문방송 진행에 대해 이야기한 안병진 PD는 소중한 인연이다. 그는 ‘작은 방송국의 갈 길은 전문음악방송.’이라는 요지의 기안을 몇 번이나 올려 좌절했다 이번에 팀장이 돼 개편을 주도했다.

경인방송에는 이전에 록 전문 프로그램을 편성했지만 ‘시끄럽다’는 기성세대 애청자들의 반응에 폐지됐다고 한다. “처음 회사에서 너무 헤비한 메탈 음악보다 애청자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선곡을 요구했습니다. 저도 선배 DJ들처럼 녹음방송으로 곡 소개 정도의 간략한 멘트와 일방적 선곡을 생각했어요. 2달 동안 생방진행을 해보니 몸은 피곤하지만 이제는 단골손님들이 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나 안부를 물을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즉석에서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면 너무 좋아들 하셔서 보람을 느낍니다.”

남들이 말리는 직업만 골라서 선택했던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낙원상가 옆에서 1평 반짜리 ‘정음사’ 레코드가게에 손님으로 드나들다 음악을 많이 안다는 이유로 운영까지 했다. 월간 ‘팝송’으로 만난 레드제플린 팬클럽 회장출신인 그는 1988년 성음에서 메탈리카 4집 해설지를 쓰며 평론가로 공식 데뷔했다. 이후 월간 뮤직랜드의 객원기자와 편집장을 거친 그의 손을 거쳐 온갖 국내 록 잡지가 만들어졌다. 1990년 서라벌레코드 계열사였던 월간 핫뮤직을 창간해 공연기획과 음악자문 역할도 했다. 평론가 김태훈을 발굴한 월간 ‘월드팝스’, 평론가 고종석을 키운 ‘록킷ROCKIT' 창간, 이후 성문영, 박준흠이 만든 월간 ‘서브’의 편집장이 되어 핫뮤직 스타일로 변화시켰다.

운전을 하면서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와 말장난이 가득한 라디오 방송이 나오면 짜증이 난다. 진짜 음악을 들려주는 방송이 거의 없는 요즘, 성우진의 방송은 좋은 음악에 굶주린 우리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그는 지금의 방송을 위해 평생 동안 준비를 해왔다. “저는 남들처럼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꿈은 없었습니다. 그저 뮤지션들하고 잘 지내면서 사기꾼 소리 안 듣는 평론가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라디오 DJ라 생각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소원을 다 이룬 것 같습니다. 이제 오랫동안 청취자들과 제 라이브러리에 있는 좋은 노래를 통해 즐겁게 소통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인생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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