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散(흩뿌릴 산)'자에서 비롯… 메이지 시대 '찌라시' 전국에 퍼져

금년 10월엔 일본어 '삐라(ビラ)'라는 말이 크게 나돌더니, 연말엔 삐라의 유사어인 '찌라시(チラシ)'가 정치권의 공방전과 함께 널리 회자되고 있다. 12월 7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이른바 '정윤회 동향 문건'에 대해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이후부터다.

삐라와 찌라시는 모두 '전단(傳單)'을 뜻하는 일본어이지만 그 어원은 서로 다르다. <주간한국> 2448호(2012.10.29.~11.4) 어원 이야기 <일본 메이지시대 '별장(VILLA) 판매 광고지'서 유래> 편에서 밝힌 것처럼, 삐라의 어원은 영어 빌라(VILLA)이고, 찌라시(散らし)는 한자 散(흩뿌릴 산)자에서 비롯된 말이다.

일본어 '散らし'에서의 '散'은 한자문화권의 공용음인 '산(san)'으로 읽지 않고 일본식 훈독인 'ち(chi: 치)'로 발음한다. 우리나라에선 '지라시'가 올바른 표기법이라 하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대통령처럼 '찌라시'라 발음한다.

학계 일각에서는 撒(뿌릴 살)자가 덧붙은 '撒き散らす(마키치라스)'에서 '散らし(치라시)'가 비롯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散' 자체에 '뿌리다'의 뜻이 존재한다. <한서(漢書)> 고후기(高后紀)에서 고모인 여수가 조카 여록에게 노하며 "너는 장군이면서 군대를 버렸으니, 이제 우리 여(呂)씨는 몸둘 곳이 없다"라면서 주옥과 보기(寶器)들을 모두 다 꺼내어 대청 아래로 '散하며' "남이 지켜주진 않는다!"고 외칠 때의 散이 곧 '내뿌리다'로 쓰인 용례이다.

이처럼 '찌라시'는 '뿌리는 것'에서 나아가 선전(宣傳) 등을 쓴 종이를 길에서 뿌린 것이 그 유래다. 일본어에서 찌라시는 원래 '뿌리는(散ら)'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었지만, 그것이 '뿌리는 종이'를 나타내게 된 것은 에도(江戶) 시대 중기 이후이다. 메이지(明治) 시대에 이르러 '찌라시'라는 말이 전국에 퍼졌고, 당시 미쓰코시(三越)의 전신인 에치고야(越後屋)의 찌라시는 안 들어가는 집이 없을 정도로 고루 나눠줬다고 한다.

이번 대통령의 분노와 '변(辯)'이 압축된 한마디 '찌라시'는 우리나라에선 아무런 근거 없는 시중의 뜬소문(浪說) 등을 담은 정치권과 증권가, 연예계 등의 사설 정보지를 뜻한다. 모름지기 비룡(飛龍)은 현인(賢人)들을 가까이해야 길하고,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들이 청와대 공식문건화하면 불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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