麴= 눌러 만든 면, 鬚=잘게 썬 면… <고려도경> “고려 10미(味) 중 으뜸”

설 잔치는 끝났는데 정가에서는 때 아닌 국수 이야기로 뜨겁다. 2월 23일 박대통령이 먼저 경제를 국수에 비유하여 “우리 경제가 참 불쌍하다. 그런 불어터진 국수 먹고도 힘을 차리는구나. 그래서 앞으로는 좀 제때 제때 그런 거 먹일 수 있도록 좀 중요한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안들도… 통과를 시키고. 우선 경제를 살리고 봐야 되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완구(李完九) 총리는 25일 “경제 살리기에 온 국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인식을 같이 한다”고 말했지만, 이해찬(李海瓚) 전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시 “대통령께서 퉁퉁 불은 국수를 먹게 된 경제가 불쌍하다고 했는데 그건 국가원수의 언어가 아니다”라고 쏴붙였다. 정의당 심상정(沈相女丁) 원내대표는 더 나아가 “불어터진 국수 한 가닥조차 못 먹고 국수 값만 지불하는 우리 서민이야 말로 불쌍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국수의 유래는 아주 오래됐다. 2005년 중국 청해(靑海)성 라자 지역에서는 4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류 최초의 국수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비록 중국에서 전래되긴 하였지만,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맛있는 음식에는 10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국수가 으뜸이다(食味十餘品而麵食爲先)”라고 한걸 보면, 우리네 조상들의 국수 솜씨는 가히 일품이었고 고려 때는 이미 전국에 널리 유행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래로 중국에서는 국수를 ‘麵(면)’이라 불러왔다. 메밀이나 밀(麥)의 가루를 반죽하여 홍두깨로 힘주어 밀면 반반한 평면(平面)이 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그 밀가루 반죽의 평면을 麵(면)이라 하고, 그것을 잘게 썰어낸 가락을 ‘면발(麵條)’이라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자체번역어이자 토종한자어인 ‘麴鬚(국수)’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鬚(수)의 정음은 ‘슈’여서 조선시대 <역어유해(譯語類解)>에선 ‘국슈’라 표기하였으며, 후에 ‘국수’로 단모음화하였다.

麴(국)은 麥(메밀 맥)과 鞠(공 국)의 생략형으로 이루어져, 공처럼 둥글게 눌러 뭉친 누룩(曲子)을 뜻한다. 그러나 麴鬚(국수)에서는 麴자나 鬚자나 모두 비유적으로 쓰였다. 즉 麴은 제조방식 면에서 누룩처럼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밀대로 눌러 만든 麵(면)을 의미하고, ‘鬚(머리털 길게 늘어질 수)’는 면을 잘게 썰어 머리털처럼 길게 늘어진 면발을 나타낸다. 식감 좋았던 고려 때 국수처럼 우리네 경제도 쫄깃하고 탱글탱글한 국수였으면 참 좋겠다.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장 www.hanj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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