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신년에 KBS 2FM은 설 특집방송을 위해 성인남녀 2천 명에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가요 3곡’을 추천받았다. 총 6천 곡 중 <한국인의 좋아하는 가요 Top 100>에 선정된 노래들은 구정 연휴기간인 2월 18일(수)부터 20일(금)까지 낮 12시-13시에 3일에 걸쳐 <5일간의 음악여행>이란 제목으로 <김성주의 가요광장>에서 방송되었다.

이런 식의 설문조사를 통해 한국인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선정한 사례는 꽤나 많다. 이젠 별 흥미를 느끼지 않을 때도 된 것 같은데 방송국 측에서 논평을 요청해 온 것도 있고 순위를 매겨 놓으니 궁금증이 생겨나 슬그머니 챙겨보게 된다. 일단 10년 전인 2006년에 MBC 라디오에서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100곡> 순위와 비교해서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 분명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순위를 살펴보니 이전에 시도되었던 각종 조사들과는 전혀 다른 흐름을 알려주는 결과가 나와 흥미롭다. 1위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차지했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무수했던 지상파 TV나 라디오의 설문조사에서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1위에 등극한 결과는 처음이다. 이는 년 초에 화제를 몰고 온 예능프로 ’토토가‘로 인해 생성된 ‘90년대 가요’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10년 전엔 신세대 트로트 열풍을 몰고 온 장윤정의 ‘어머나’가 압도적인 지지로 1위에 올랐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24위로 추락했다.

1위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을 비롯해 7위 김광석 ‘서른 즈음에(1994년)’ 9위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1992년)’, 10위 전람회 ’기억의 습작(1994년)’까지 90년대 가요가 톱10에 4곡이나 포진되어 있음은 요즘의 트렌드가 90년대 가요임을 확실하게 증명한다. 3위 노사연의 ‘만남’도 1989년에 발표되었지만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부터이니 사실 상 베스트10 중 절반에 가까운 노래가 90년대 가요인 셈이다. 10년 전에는 베스트10에 선정된 90년대 가요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단 2곡에 불과했다. 톱10에 가장 많은 2곡이 선정된 조용필은 6위 ‘돌아와요 부산항에(1976년)’, 8위 ‘그 겨울의 찻집(1985년)’으로 ‘가왕’의 자존심을 지켰다. 10년 전에도 조용필도 톱10에 가장 많은 2곡이 선정되었는데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3위, ‘허공’으로 8위를 차지했었다.

2000년대 이후 발표된 노래 중 톱10에 진입한 노래가 단 2곡이라는 결과는 충격적이다. 더구나 90년대부터 지금까지 10대 음악과 K-POP을 대변하고 있는 아이돌 음악이 베스트10에 단 한 곡도 진입하지 못한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라디오에선 7080음악이 여전히 청취자들에게 어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2000년대 이후 발표 곡 중 당당히 2위에 오른 노래는 80년대 가수 이선희의 ‘인연(2009년)’이다.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의 남자’OST로 화제를 모았던 이 노래는 애틋한 이선희의 보컬과 누구나 공감할 가사로 인해 이미 라디오 최대 신청곡으로 각인되어 있기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흥미로운 노래는 5위를 차지한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2012)’다. 남성듀엣 ‘금과 은’시절 가수왕에 등극했을 정도로 인기를 구가했지만 한물간 왕년의 인기가수가 최근에 발표한 신곡이 5위를 차지한 사실은 이례적이다. 이 노래 역시 청춘이 지나버린 중장년세대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사’가 특별한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자의 대표곡 ‘동백아가씨’는 반세기 전인 1964년에 발표된 노래이지만 상위권인 4위에 랭크되었다. 10년 전에도 2위였다. 이는 요즘 라디오의 강력한 청취 층이 중장년임을 말해준다.

톱10에 선정된 노래들이 장르적으로 여전히 발라드와 트로트에 집중되어 있음은 다양성 부문에서는 아쉽다. 10년 전의 순위에서도 비슷했음은 대중의 선호도가 급격하게 변하지는 않는다는 증거다. 하지만 선정된 노래들이 60년대부터 현재까지 반세기의 세월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은 라디오라는 매체가 다양한 연령층이 청취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사라질 것 같았던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인 라디오의 건재는 소통이 실종된 디지털시대에 오히려 더욱 큰 미덕으로 존재가치를 발휘하는 것 같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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