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국 건축에 담긴 시대상ㆍ자연관ㆍ삶

국내 여행을 하건, 해외 여행에 나서든 가장 먼저 '여행'을 실감케 하는 것은 이색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현지 건축물이다. 그것이 옛 것이든, 현대적 건물이든 각기 다른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고 역사가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런 건물 앞에서, 가령 서양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석조건물을 볼 때면 우리는 왜 저런 건물을 짓지 못했을까 하는 부러움이 일고, 중국의 자금성과 같은 웅장하고 짜임새 있는 건물을 보면 괜스레 왜소해지는 느낌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김동욱 경기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전혀 그렇지 않아도 되고 달리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펴낸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목조건물 위주로 건축한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고, 자금성과 비교되는 한국 건축의 특질이 다양하다고 강조한다.

가령 동아시아 목조건물은 중국 건축 역사와 관련 깊다. 중국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단계에서 황토로 단을 높이 쌓고 그 위에 목조 집을 짓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 뒤 한나라와 남북조 시대를 지나면서 목조 건축술은 한층 정교해져 고구려, 백제, 신라로 전해지고 다시 일본에 전파된다. 저자는 중국이 돌이 아닌 목조로 집을 지은 것에 대해 재료, 노동력, 시간 면에서 목조 건물이 석조 건물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중국이 큰 목조 건축을 위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을 동아시아의 범주 안에서 가능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면서 우리 건축의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중국 건축과의 공통점과 차이를 찾아보고 우리와 비슷한 전개 과정을 밟아온 일본 건축과 비교해 한국 건축의 핵심을 짚는다. 한중일 건축 교류사라는 큰 흐름을 살펴본 뒤 지붕, 공포와 화반, 온돌, 창호문, 채색과 장식, 공간 배치 등 부분부분을 세세하게 3국 건축의 특징을 분석한다.

예를 들어 한중일 건축에서 나타나는 지붕과 난방시설의 차이를 보자. 유럽 건물이 벽체의 파사드, 즉 외관에 디자인의 초점을 맞춘 데 비해 동아시아 건축의 핵심은 단연 지붕이다. 동아시아 지붕은 공통적으로 건물에 비해 크고 곡선이다. 곡선도 처마뿐 아니라 넓은 지붕면 자체가 완만한 곡면이다.

이런 공통점 아래 제각각 특징도 있다. 중국 예원정자의 경우 꾸밈이 강하고, 날아오를 듯 지붕이 휘어져 있다면, 일본 신사지붕은 다소 밋밋한 곡선이다. 반면 한국의 문묘대성전은 기둥을 일직선상에 나란히 세우지 않고 가운데 쪽을 안쪽으로 살짝 휘어지게 해 건물 전체가 곡선을 이루게 한다.

또 우리 난방시설이 구들이라면, 중국은 캉, 일본은 고다쓰다. 한반도에서 3∼6세기에 흔히 보이던 구들은 일본에서 유행하다 7세기 경부터 자취를 감춘다. 습기가 많고 상대적으로 따스한 기후에다 구들을 전한 한반도 이주세력이 힘을 잃은 정치적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 때문이다.

3국 간에는 건물과 공간의 관계도 차이가 있다. 자금성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건물은 중심축 선상에 건물을 대칭으로 배열하고, 모든 건물이 네모 반듯한 틀 안에 엄격하고 바른 모습으로 조합을 이룬다. 하지만 한국은 산이 많은 지형으로 건물은 좌우대칭보다는 지형에 따라 불규칙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배치됐다. 일본은 큰 지붕 아래 내부 공간을 세심하게 분할했지만 외부 공간에 대해서는 무감각할 정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같은 자연스러운 한국 공간이야말로 이 시대 감각에 맞다고 한다. 근대적 합리주의 시대 건축은 정확하게 계산된 세부가 중시됐지만 21세기엔 다양한 세부를 전체가 자연스럽게 포용하는 것이 대세이기 때문이다.

책은 건축이 삶의 공간이자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며, 인간의 생각(철학)이 반영된 종합구조물이라는 것을 한중일 건축을 섬세하게 비교해 그 아름다움의 속살을 살핀다. 건물의 외형보다는 당시 지식인들의 건축에 대한 생각, 건축을 짓는 데 참여한 장인들의 기술, 물질적인 여건 등을 통해 시대의 건축을 입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건축과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즈음 일독을 권할 만하다. 김동욱 지음, 김영사, 360쪽,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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