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같은 그림에서 또 다른 꿈을 꾸다

신몽유도원도 캔바스,아크릴릭,젤. 194 x 130 cm. 2015.
한국화의 정체성 탐구와 현대화에 매진해 온 석철주 작가의 화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모처럼의 전시가 열린다. 8월 26일부터 고려대학교 박물관 기획전시실 및 현대미술전시실에서 10월 18일까지 개최되는 '몽중몽(夢中夢'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30여년 간 추계예술대학교에서 교육자로서 보낸 삶을 마감하고 온전히 작가로서 삶을 향한 새로운 다짐과 의지를 확약하는 자리로 1985년 제 1회 개인전 이후 30년 동안 쌓아온 그의 화업을 처음으로 한 공간에서 선보인다. 또한 전작 위주의 회고전을 지양하고 진일보한 최근작 위주로 꾸며질 예정이다.

'신몽유도원도 15-22'. 캔버스에 아크릴, 젤, 194 x 130 cm, 2015.

석철주는 한국화를 둘러싼 여러 변화의 바람 속에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일군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한국화 작가들은 전통에 도전하기도 하고 전통과 현대의 새로운 통섭을 실험하는가 하면 일부는 서구화 바람에 맞서서 전통적 회화의 원형을 지키려고 노력해왔다. 석철주는 이러한 한국화의 역사에서 순수한 전통의 마지막을 체험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신몽유도원도. 캔바스,아크릴릭,젤. 300 x 130 cm. 2015.
작가는 16세부터 청전 이상범 문하에서 동양화 교육을 스승이 작고할 때 까지 5∼6년간 배웠고 동양화를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그는 이상범의 '무릎 제자'라고 불리며 전통적인 방식의 사제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80년대 초부터 수묵산수, 채색화를 섭렵했다. 이후 작가는 종이와 먹이라는 전통 재료로부터 캔버스와 아크릴을 이용한 회화로까지 표현 재료와 기법의 영역을 확장시키면서 현재의 독특한 작업에 이르렀다.

작가는 1990년부터 시작한 '생활일기' 연작에서 독, 버선, 실패 등 한 때 생활 속 익숙한 기물을 먹과 아크릴로 그리거나 광목천에 바느질하고, 집이나 달항아리 모양을 성형 캔버스로 제작하는 등 전통적 소재의 발굴과 매체적 실험을 병행하며 한국화의 현대화의 요구에 부응하는 주목받는 중견화가로 자리잡았다.

2000년대초부터는 동양화의 전통 장르인 산수화를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소위 '물로 그린 회화'로 불리는 '신몽유도원도' 연작을 선보였다. 이는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바탕색을 바르고 그 위에 흰색을 덧씌운 후 물을 넣은 에어 건과 평붓으로 산의 윤곽을 그려내고 표면의 물감을 지워가며 바탕을 드러내는 형식으로서 제작한다. 작품들은 전통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현대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전통 화법에서 발견되는 구도와 공간감 등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어 전혀 새로운 느낌을 준다. 하계훈 미술평론가는 "그의 작업은 전통화법의 기초 위에 그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표현 재료와 형식에 있어서는 동, 서양을 가볍게 넘나들며 전통적 회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고도의 표현의 자유와 절제된 긴장감 속에 무한한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다"고 평했다.

작가는 일상에 매몰된 현대인의 척박한 삶에 대한 고민이 겹치며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도달할 수 없으나 꿈꿀 수 있는 이상향을 발견하고 이 연작에 정진해 왔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그린 '신몽유도원도'는 기존의 시각적 파노라마에 촉각적 감각을 자극하고 장식성을 더해 몽환적인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어서, 마치 그림이 꿈같기도 하고 그림 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다.

'몽유도원도'의 이상향은 오늘의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한번쯤 머물고 싶은 곳이다. 이번 '몽ㆍ중ㆍ몽' 전은 관객에게 신선한 이상향을 전하면서 동시에 예술만 알고 살아온 작가가 자신이 세운 목표에 얼마나 접근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02-3290-1514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