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없는 위조설 작가·국격 해쳐""위작품 있으면 공개해야… 작가의 진위 판단 막는 건 국가 수치"일본 동경화랑 소장 작품 약 100점 재정난에 직원들 몰래 팔아

이우환 화백(왼쪽)은 주간한국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위조설'이 대한민국 문화 국격은 무너뜨린다고 개탄하면서 작품에 대한 진위 판단은 작가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파리에 머물던 이우환(79) 화백은 건강 검진을 위해 10월 23일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장거리 비행이 노(老) 화백에 힘든 여정이지만 이 화백은 한 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상황' 때문이다.

이 화백은 파리에 있는 동안 자신의 작품을 둘러싼 위조설과 경찰이 인사동 한 화랑을 압수수색했다는 소식을 지인들을 통해 접했다고 한다. 한국에 도착한 이 화백은 위조설이 나오고 확산되는 예술계와 언론의 풍토를 개탄하고 경찰조사 행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국내외에서 말을 아껴온 이 화백은 지난달 24일 서울 모처에서 가진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50년 넘는 화업에 대한 소회를 밝히며 위조설에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이 화백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전시를 해 인연이 깊은 동경화랑이 재정 위기에 처하자 보관 중인 100점 가까운 작품을 작가 몰래 팔아치운 사실도 처음 공개했다.

-국내에서 가짜 작품이 있다는 '위조설'로 인해 미술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파장이 큰데 알고 있는지.

"한국의 지인들이 알려주거나 인터넷을 통해 알고 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참 답답하다."

- '위조설'에 대한 입장은.

"이우환 하나 죽여서 대한민국 정부가 얻는 것이 무엇인가. 그간 몇 차례 내가 확인한 작품에는 위작이 없다고 그토록 설명을 했는데…. 도대체 몇 년째 실체 없는 위조설로 작가를 죽이고 대한민국 문화 국격을 떨어뜨리고 있는 건가. 위조범이 있으면 잡으면 되고, 그 증거를 나에게 보여주면 되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정말 미술판이 한심하고 어이가 없다. 누가 작가를 죽이기 위해 일을 벌이고 있다는 의심까지 든다."

-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작품은 없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위작품을 봤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

"한겨레신문과 인터뷰했는데 '가짜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난 '(위작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없다'고 다르게 썼어. 신문은 작가가 말한 그대로 써야지. 신동아 기자도 위작품 관련해 기사를 쓴다고 하기에 위작품을 봤냐고 물으니 못봤다고 해. 사실부터 확인하고 기사를 써야지. 그렇게 해서 기사 나가면 작가는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는데…. 위작품을 봤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걸 내게 보여주기 바란다. 나도 궁금하다."

- 정말 위작품이 하나도 없다고 보는지.

"도깨비 시장에서 나돌아다니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감정조차 필요 없는 위작품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본 작품 중엔 위작품이 없다. 위작품을 봤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가짜와 내가 본 진품 작품들을 혼돈시키려고 장난하는 것 아닌가. 가짜 있으며 나에게 가져와 확인시키면 되는 것 아니야. 작품은 작가가 확인하는 것이야. 내가 확인해 준 작품 중에는 가짜는 단 한 점도 없었어. 최소한 내가 확인해 준 작품들 중엔."

-현재 '위작' 수사를 하고 있는 경찰은 화랑에서 압수한 작품을 작가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하는데.

"그것도 희한한 일 아닌가. 진위 알려면 경찰이 작가한테 보여줘야지. 작가가 작품을 보겠다는데 어떻게 보여주지 않을 수 있어. 세상에 그런 나라는 없어. 있을 수 없는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보자고 하는데 가로막다니….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부에서는 위작품에 사인을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데.

"도대체 남의 작품에 사인하는 경우가 세상에 어딨나. 대한민국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누가 이런 해괴망칙한 소문을 퍼뜨려 대한민국 문화국격을 망치려고 하는 것이야."

-주로 일본에서 활동을 해 작품이 일본에 많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70년대 중반 집에 화재가 나 상당수 작품을 잃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잘못 전해진 거다. 화재가 난 게 아니고 74년경으로 기억되는데 일본에서 집을 빌려쓰고 있었는데 철거되면서 작품 일부를 잃은 것이다. 해체 업체가 집을 철거하지 않고 있던 중에 한국에서 박서보 선생 등 지인들이 와 작업실을 보여주려고 갔는데 그 사이 집을 해체했다. 집안에는 태반이 나무 조각이고 작품은 많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지인 중 한 사람인 신옥진(부산 공간화랑 대표)씨에 따르면 일본 유명 화랑에 작품을 맡겨 놓았는데 부도가 나 작품을 잃었다고 하는데.

"사실과 조금 다르다. 일본에서는 주로 동경화랑과 전시하고 거래를 해왔는데 화랑 주인이 70년대 말 병이 들어 입원한 적이 있다. 그때 화랑은 부채가 많아 내 그림도 팔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인들이 내 그림이 여러 화랑에 걸려 있다고 알려줬다. 확인해보니 실제 내 그림이 걸려 있어서 병원으로 가 사장한테 물으니 '창고에 그대로 있다. 염려 말라'고 했다. 얼마 뒤 친한 화랑 주인과 콜렉터가 또 내 그림이 여러 화랑에 걸려 있다고 해 그것을 확인하고 병실로 사장을 찾아갔다. 동경화랑 사장에게 '내 그림이 나가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따지자 사장이 화랑 직원들을 다 불렀다. 추궁을 하니 가장 나이 많은 직원이 '화랑 사정이 어려워 창고 그림들을 모두 팔았다'고 했다. 내 작품뿐만 아니라 일본 유명 작가들 작품도 다 팔았다는 것이다."

-당시 잃어버린 작품이 얼마나 되는지.

"글쎄 80∼90점… 100점 가까이 됐다. 70년대 말 가장 많이 작품을 했는데 한해 100점 정도를 그렸다. 그런 소중한 작품들을 1980∼81년 사이에 동경화랑에서 잃어버린 것이다."

-화랑을 상대로 고소를 하려고 했다는데.

"내 그림이 팔렸지만 난 돈 한푼 못 받아 고소하려고 했다. 친한 평론가와 화랑주인과 상의했는데 고소해도 그림을 찾기 어렵고 다른 작가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결국 작품도 찾지 못하고 돈도 받지 못했다."

- 그 후에 잃어버린 작품을 본 적이 있는지.

"일본에서 분실한 것 외에 80년대 중반 한국에 머물 때 원서동에서 작업을 하다 삼청동으로 이사하는 과정에 작품(바람 시리즈) 상당량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일부를 한국에서 봤는데 작품 1개를 갈라 2개로 만들어 놓은 것까지…."

-경찰의 조사와 관련해 응할 생각은.

"변호사 등을 통해 근거없는 위작설에 대한 심경제출 등으로 진실을 밝힐 용의는 있다. 경찰도 상식적이고 예술가에 대한 선진국의 예를 참고했으면 한다. 최소한 위조범과 위작품을 확보해 놓고 수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사를 하더라도 위조 관련자들만 수사하고 선량한 거래는 보호되야지. 이런 상식선은 지키면서 수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끝으로 할 말이 있다면.

" '위조설'이나 경찰의 행태는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허위사실의 내용이 보도돼 나라를 흔들고 있는데 정부는 왜 이런 것을 방임하고 있나. 실체 없는 위조설로 작가를 죽이고 대한민국 문화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계속된다면 '중대 결심'을 할 수도 있다. 작품의 창작 및 이에 대한 확인은 작가의 기본권이고, 타인이 감정을 하려면 위임장을 받아야 돼. 그렇기 때문에 현대화랑 박회장, 신옥진 사장에게 위임장을 주기까지 했어. 그런데 권리 없는 인사들이 위임장을 받지도 않고 감정을 하면서…. 작가마저 거부하겠다고 하니…. 참으로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