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규준'정처 없는 여정-동행'전, 22일까지 여니갤러리
마오쩌둥(毛澤東)의 정풍운동(整風運動) 등 영향으로 1958년 유학 중이던 폴란드에서 영국으로 망명했던 중국 피아니스트 후쫑(Fou T'song, 傅聰)이었다. 그가 연주하는 야상곡(Nocturnes)엔 조국 폴란드를 떠나 돌아오지 못했던 쇼팽(Chopin, 1810~1849)의 유랑여정에 대한 동병상련 공감흔적이 스며 있었다. 건반은 거칠고 토해 내듯 후끈하면서 동시에 생의 아름다움을 서정으로 물들이는 자애의 선율이 교차한다. 남태평양 섬 뉴질랜드에서 15년 동안 그림 그리다 2012년 한국으로 귀국한 양 화백의 이번 초대전 작품에서 그런 후쫑의 섬광이 번쩍이는 것은 실로 놀라운 해후라 할 만하다.
칼리그라프, 내면을 흔들어 깨우는 정신
양 화백은 자연주의 심화작업에 대한 갈증으로 지난 1997년도 뉴질랜드로 이주한다. 낯선 환경과 문화 등에 대한 혼돈으로 3~4년이라는 꽤 긴 시간을 헤매게 될 즈음 남태평양의 폭포와 야자나무 무성한 자연 속에서 한국의 풍경이 오버랩(overlap)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는 "피부색과 언어와 가치관의 다름을 뛰어넘는 자연이 품는 거대한 포용력과 따스함의 체험에서 '나'라는 존재를 만나게 된 것은 축복이었다"라고 토로했다.
그 이후 인간과 존재의 담론을 담아 낸 '빛', 음양조화의 혼성메시지를 전하는 '중용'시리즈를 연속으로 발표한다. 2005년부터 화면에 등장하는 칼리그라프(Calligraph)는 하늘, 별, 구름, 은하수와 기억과 꿈결이 공존하는 여정이다. 작가는 "유년시절 할아버지 방에서 창호지문을 통해 들어오는 흐릿한 빛 속에서 꿈틀거리던 병풍글씨가 뉴질랜드에서 신기하게도 다시 떠오르며 나의 내면을 흔들어 깨운 정신의 징표가 되어 주었다"라고 말했다.
권병준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