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만든 그림… 삶과 세상을 보다

‘흔적’ 한지에 검은 채색, 137x202cm, 2015
일상의 삶 속에, 또는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의, 우주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그 소소한 일부는 자연을, 우주를 함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작은 것들은 간과되거나 무시되기 일쑤다. '일부'의 존재와 의미성이 발현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는 현대 사희의 물질주의, 거대 지향주의, 성과주의 등과도 무관하지 않다. 확대되가는 물질 메커니즘 속에 소외되는 현대인, 축소되거나 외면되는 자연(성)을 반영하는 셈이다.

자연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부를 통해 더 큰 자연과 우주를 말하고 깊이있게 삶과 자아를 돌아보게 하는 신선한 전시가 눈길을 끈다.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11월 18-29일 열리는 김진관 개인전이다.

전시는 간결한 선과 마픈 풀, 줄기 등이 담백한 한지에 울림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이전 전시에서도 꽃잎, 풀, 콩, 개미 등 작고 평범한, 하찮하기까지한 것들을 통해 자연과 삶을 얘기해 왔다.

이번 전시는 더욱 간결해진 선과 메마른 풀, 나뭇잎, 줄기 등이 도드라진다. 전통 한지 위에 흩어진 마른 풀들이 적조하게 그려져 있다. 몸체에서 떨어져 나와 부유하다 추락한 것들이고 흙으로 돌아갈 것들이다. 작가는 마른 풀, 줄기 등을 통해 생사의 무상함을 말한다. 낙엽과 줄기, 씨앗은 동시에 선이고 먹이다. 꾸밈없이 간결하고 자유로운 선은 그래서 생명과 생사에 대한 메시지를 더욱 극명하게 전한다.

‘자연’ 한지에 검은 채색, 175x175cm
박영택 미술평론가는 "작가의 그림, 선은 자연물 위에 얹혀진 선이자 자연이 만든 선, 형상을 따라간 흔적이다. 동시에 그것은 생명이 발아하고 존재가 형성되어나가는 통로를 기록한 지도이기도 하다"고 평한다.

작가의 간결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필선과 지극히 평범한 소재, 담백한 채색은 거대함과 스펙터클, 현란한 논리로 무장한 현대미술의 시각중심적인 욕망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 시각 앞에 작가의 그림은 누추해 보이고 가엾기까지 하지만 감동은 사뭇 다르다.

이번 전시는 사소한 것에서 진지한 의미를, 일부와 전체의 동시성을, 죽음을 통해 생명을, 소외 속에 자아(존재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02-735-9938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