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품’ 확보 없는 위작 수사는 수사준칙 무시한 것”
위작품 확보 위해 진품 소장자 압박, “세무조사”운운도
무리한 수사로 수사의 공정성ㆍ정당성에 짙은 회의 불러와

지난 3년간 미술계를 어지럽혀 온 ‘이우환 위작’ 논란은 사건을 담당한 수사당국의 책임이 상당하다는 평가다. 위조품 확보 후 조사라는 수사준칙이 무시됐고, 위작 주범이라는 판맥책에 대한 조사는 외면하고 선량한 거래를 해치는 과잉수사, 감정협회와 또 다른 위작범의 진술에 따른 오도된 수사, 심지어 증거조작 의혹까지 제기되는 등 총제적 난맥상이 드러났다는 분석에서다. 게다가 작가의 작품 감정권이라는 천부적 권한을 무시하고 타 국가기관에 작품 감정을 맡기려는 행태는 문화계 전반의 지탄을 받고 있다.

‘이우환 위작’ 사건이 지난 3년간 혼란을 거듭하는 동안 문화국력의 상징인 이우환 화백의 위상은 적잖이 훼손됐고, 문화국격 또한 상처를 입었다. 세계적 거장을 둘러싼 경찰 수사의 문제를 짚어봤다.

‘위작품’ 없는 ‘위작 수사’ 무리수 둬

‘이우환 위작’ 사건의 요체는 위작범으로 지목된 현모(65)씨가 100억대의 이우환 위작을 판매책이라는 이모(66)씨를 통해 국내외에 유통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사의 핵심은 ▦위작범 현씨의 위작 여부 ▦위작범 현씨와 판매책 이씨 간에 위작품 거래 여부 ▦판매책 이씨와 또 다른 판매책으로 알려진 김모(48)씨 간의 거래 내역 등이다. 그 외 부수적으로 위작품의 거래 및 유통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이에 앞서 ‘위작 사건’인 만큼 위작품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경찰(서울청 지능범죄수사대)은 위작품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위작품 확보 후 관련자 소환 조사라는 미술품 수사의 대원칙이 무너진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자 경찰은 위작품 확보 명분으로 무리하게 ‘진품’ 소장자 작품을 압수하려다가 커다란 반발을 사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 10월 16일 인사동 K화랑에서 이우환 작품 6점을 압수했다. 경찰은 위작 혐의가 있어 압수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K화랑이 단지 감정 건수가 많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경찰은 K화랑 압수 작품에 대해 ‘위작’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경찰은 ‘가짜’ 색출이라는 명목 아래 K화랑을 비롯해 일반 화랑의 거래처까지 추적하는 무리수를 뒀다. 게다가 그 과정에 “작품이 가짜다”“세무조사 시키겠다”는 식으로 압박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부산의 J 소장자에게 전화해 “작품이 가짜”라고 해 격렬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J씨는 수사진은 물론 다른 경찰서 직원까지 동원해 고압적 자세로 사업체를 박살낼 듯한 기세로 추궁했다면서 과잉수사에 대한 불편함을 나타냈다. J씨는 경찰청장은 물론 관계요로에 진정하겠다면서 전화내용을 녹취까지 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C 소장자는 “선량한 소장자를 억지로 조사까지 받게 했다”면서 “3-4시간 진품 그림을 가져다가 무슨 일을 꾸몄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C 소장자의 항의에 하루만에 작품을 돌려줬다.

경찰 수사진으로부터 전화질의를 받은 인사동 Y화랑 K모 대표는 “나는 수표도 사용하지 않는데 내 수표가 가짜 만드는 사람 통장으로 들어갔다는 어이없는 전화를 받았다”며 경찰의 수사 행태를 질타했다. 대구의 Y화랑, 부산의 P화랑 대표도 있지도 않은 수표건을 얘기하기에 “무슨 이런 식으로 수사를 하고 있냐”며 수사진을 향해 불편한 심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경찰 수사 균형성 의문 제기돼

경찰은 이번 ‘위작 사건’의 핵심인 위작범 현씨의 위작 여부와 이른바 위작범 현씨와 판매책 이씨 간의 위작품 거래에 대해 아직 밝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6월 중앙일보와 7월 경향신문 기사는 경찰 수사를 인용해 ‘현씨가 이우환 위작을 이씨에게 건넸고, 이를 판매해 100억대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보고 현씨와 이씨를 수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현씨와 이씨가 이우환 위작으로 100억대의 수입을 올렸다는 경찰발(發)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판매책이라는 이씨는 이우환 위작을 거래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더욱이 판매책이라는 이씨가 언론 등에 위작 판매범으로 보도돼 명예가 훼손되고, 4개월째 출국금지로 인해 일본의 회사(00고미술연구소)가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며 조사를 요청해도 경찰은 외면하고 있다. 급기야 이씨는 지난 10월 15일 국민신문고에 '경찰의 불합리란 출국규제로 인한 재산상 손해발생'이란 민원까지 넣었으나 경찰은 ‘기다려 달라’는 회신만하고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

위작범이라는 현씨에 대한 수사도 지지부진하다. 실제 현씨는 고미술 중 민화 전문가로 이우환 같은 현대 서양화와는 거리가 멀다. 최근에는 현씨 대신 현씨와 공모, 또는 현씨가 사주한 것으로 의심되는 이성0이 이우환 위작범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1월 10일 자 ‘가짜 그림 월 5~7점 그려 수억원에 팔았다’ 는 제목의 기사와 신동아 12월호 ‘이우환 화백 위작(僞作) 의혹 문서’ 제하의 기사에서는 이성0이 비중있게 다뤄지고 그가 이우환 위작의 주범처럼 표현되고 있다.

실제 경찰도 현씨보다 이성0에 대한 수사를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신동아 기사는 그러한 경찰 수사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설령 이성0이 이우환 위작을 했다 해도 판매책 이씨를 통해 국내외에 유통시켰다는 경찰발 보도는 입증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이씨는 그러한 보도와 발언 등을 부인하며 법적으로 문제삼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성0이 위조한 이우환을 비롯한 한국 대가들의 위작은 장안평, 도깨비 시장 등지에서 100만-400만원에 판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성0의 위작 중 이우환 ‘진품’으로 둔갑해 거래된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증거조작 의혹 제기되는 정황들

신동아 12월호는 ‘이우환 화백 위작(僞作) 의혹 문서’ 제하의 기사에서 ‘이씨가 2011년 4월 초순 현씨에게 이우환 작품을 팔겠다며 애걸복걸하며 살려달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현씨와 이씨 간에 이우환 위작과 관련해 9장의 내용증명을 보도하면서 ‘위작 사건’이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2011년 4월이면 현씨와 이씨가 고미술상 김모씨를 통해 처음 인사를 나눈 시점으로 이씨가 처음부터 이우환 작품을 팔겠다며 현씨에게 애걸복걸하며 살려달라고 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한 이씨는 9장의 내용증명돠 관련해 단 2장의 내용증명만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2장을 보낸 것은 기억되나 말도 되지 않아 파기해버렸다. 2장밖에 보내지 않았는데 9장은 무슨 소리냐”며 신동아 기사 내용을 부인했다.

또한 현씨가 이씨에게 보낸 내용증명은 지금까지 2장만이 알려졌는데 9장으로 늘어난 것도 의문이다. 게다가 2장은 타이핑한 것으로 돼있는데 7장이 수기로 된 것도 의아하다.

더 의문스러운 것은 내용증명 내용이다. 즉 ‘모텔비 180만원, 오피스텔 관리비 매달 15만∼30만원, 약품ㆍ재료비 500만원…’ ‘한 달 작품 보낸 수 5∼7점, 100호 1점, 80호 1점, 60호 4점…’ ‘일산과 남양주를 오가며 남양주에서 연탄가스를 쐬는 방식으로 ‘노후화’ 시도’ 등등이다.

이씨는 이러한 문서에 대해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이 문서가 현씨가 자신(이씨)에게 보낸 내용증명이 아니라 현씨와 언론에 보도된 또 다른 이씨(이성0) 간에 오간 문서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현씨와 이성0 간에 오간 내용증명을 현씨와 이씨 간의 것으로 둔갑시키려 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찰이 위조품을 확보하지 못한 채 선량한 소장가로부터 진품을 확보하려고 한 시도는 사후 위조범이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증거를 조작하려고 한다는 설이 미술계 일각에서 짙은 의혹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증거품을 확보하지 못한 채 수사를 하고 있는 행태는 비난 차원을 넘어 수사의 공정성과 정당성에 대한 짙은 회의를 불러 올 것으로 보인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