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성혜 ‘해, 달, 엄마‥’전시, 27일까지 갤러리 미쉘

강물은 풀숲근처서 빙그르 돌면서 마음 삭이듯 작은 물방울들을 일으켰다. 맑은 물 속 깊은 곳엔 동그란 기다림의 연정이 잔잔히 아른거리는데 짧고 강렬한 피아노선율처럼 교교히 흐르는 달빛분위기에 바람이 일었다. 그 순간 새 한 마리가 물살을 튕기며 힘차게 날아올랐다. 천년세월을 꿈쩍 앉고 평평하게 제 자리를 내준 긴 바위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청기와 정자(亭子)’라는 입소문을 타고 이미 가장 유명한 곳이 되었다. 청량한 물살로 영혼을 씻은 마음이 투영된 말간 하늘이 무료한 기다림처럼 드높아만 보이는데 따끈한 연분홍 진달래 꽃잎 차(茶)를 사이에 두고 봉황의 다감한 꿈 얘기가 그윽했다.

교교히 흐르는 밤공기와 적막함이 그리움을 부른다. 선연한 무늬 현란한 몸짓의 물고기 한마리가 물속에 비친 달을 만나러 길을 나서는데 푸른빛 상념이 풀어놓은 영원한 사랑의 맹서가 가늘게 흔들렸다. 곧 떠오를 내일에 임을 볼 수 있다는 설렘이 가슴을 덥힌다. 배토(坏土)로 빚은 곰살궂은 감촉의 항아리 안에 언젠가 꼭 내 사랑을 만나리라는 희망이 발그레하게 피어오른다. 산은 배달민족 심성처럼 둥그스름 온화하고 제 길을 묵묵히 가듯 박명(薄明)의 시간에 숨어버린 수줍은 연정의 선율이 능선을 타고 살포시 기다림의 노래를 불렀다.

◇희망과 설렘 그 기다리는 사랑

항아리의 테두리나 또 이심전심을 이어주는 오브제로서 오색실을 꼬아 마티에르로 적용했다. 산뜻하고도 새로움을 떠올리게 하는 실의 결은 순수한 사랑의 가교처럼 서로를 잇는다. 오색카펫을 깔아놓은 듯 그리운 이를 맞이하는 상봉의 기쁨처럼 단단한 지향과 연대감으로 곱디곱게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강산풍월의 오로지 한 점, ‘나’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거나 낮달 떠 있는 해맑은 하늘에서 에로틱한 그대 입술을 만나볼 수도 있으련만….

화면은 우주의 어울림과 일월성신 생동감을 작품의 ‘해와 달’로 함축함으로써 본류의미를 유지하면서도 정갈한 감수성의 우아함과 절제미를 상승시키고 있다. 이번 신작에서 작가는 지난 몇 년간 선보였던 ‘일월도’의 해체 경향을 드러내 보이며 회화세계를 확장해 가고 있다. 해와 달은 태초의 순결을 간직한 초월적 존재다. 마티에르에 강점을 두고 펼치는 그리운 마음의 노래는 현재를 수용하고 미래의 시간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이뤄내는 그런 사랑의 표상이기도 하다. 작가는 “어좌(御座) 뒤편에 있는 ‘일월오봉도’ 병풍에 관한 나의 해석이랄까, 조형적인 어떤 예감 같은 것이 있었다. 작가로서 그것은 작업과 관련한 갈증과도 무관치 않은 것인데 처음엔 희미했지만 그것을 부여잡고 풀어보았더니 ‘왕이 사랑한 그림’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일월도’연작이 원래 그것에서 영감을 얻었었던 바 그 연장선에서 최근 ‘사랑’에 대한 미학스토리에 주목하게 되었다. 해와 달을 상징으로 기다리는 사랑 그러나 슬픔이 아니라 희망이며 설렘을 담론으로 표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가장 진실한 언어는 나의 그림

그는 “이즈음 돌아보니 그림이라는 것이 자기의 타고난 성격이나 고집으로 그리게 되는 것 같다. 오로지 작업세계에 몰두 한 것도 ‘나’이고 그것을 ‘내 스타일’이라고 하지만 반면 주변을 잘 안돌아보고 그림세계에만 매달려 왔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나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언어는 그림이다. 그 안에서 관람자와 기쁘게 만나고 행복감을 공유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한편 서양화가 김성혜 작가는 금보성아트센터, 유나이티드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21회 가졌고 홍콩, 베이징, 파리, 라스베이거스 등 국내외 다수아트페어에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4월11~27일까지 조각가 김경원 작가와 2인전(展)으로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소재, 갤러리 미쉘(Gallery Michelle)에서 열린다.

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작품캡션

△상단좌우=해와 달, 28×65㎝(each), Mixed media on Canvas, 2016 △하단좌우=45.5×45.5㎝(each)

-김성혜 작가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