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송근영… ‘Plum Flowers’시리즈 작품세계

잎 나기 전, 꽃부터 핀다. 하늘하늘 얇은 꽃잎이 햇볕에 어울리면 기분이 좋고 희망에 부풀게 한다. 그런 얄따란 화엽 하나가, 살짝 끌어당기며 속삭인다. 내게로 와 물어 보렴! “길가에 버들은 푸른 눈썹이 교태를 드러내고, 고개 위에 매화는 백설이 향기를 날리누나. 천 리 밖의 가원(街園)이 잘 있는 줄 알겠으니, 봄바람이 먼저 해동(海東)에서 불어오도다.” <파한집(破閑集), 이인로 지음, 구인환 엮음, ㈜신원문화사>

추위 채 가시지 않은 저 하늘은 어찌나 새파란지. 옆얼굴 주름이 깊은 노선비가 동자를 거닐고 탐매(探梅) 길을 서두른다.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했던가. 해질 무렵에야 당도한 고택 마당엔 이백년은 족히 넘은 거뭇거뭇한 껍질의 홍매화가 먼 길 달려온 임을 반기는 여인의 볼처럼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선비는 마른가지에 피어난 꽃을 어둠이 밀려올 때까지 곧추 서서 바라보다 ‘우주일체의 회소(繪素)로다!’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따슨 볕 등에 지고 유마경(維摩經) 읽노라니 가볍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린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오.”<한용운 詩, 춘화(春畵), 고은엮음, 민음사>

재료의 고유성 느낌의 현대성

마음의 중심을 잃으면 감응하지 못한다는 매화 향처럼 화면은 은근하면서도 단아하다. 양지바른 곳 고즈넉한 흙담을 넘어 길손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또 낮은 산이나 들녘, 빛이 잘 드는 안방에 드리워지는 것으로 표현되는 매화나무 가지는 그리지 않고 콜라주로 표현했다. 가지가 흔들리며 조석으로 빛의 색이 변화하는 듯한 생동감은 용기(容器)에 물을 떠놓고 유성물감을 풀어 뿌려대면서 마블링(marbling)을 했기 때문이다. 나무 가지가 단색이 아니라 그 안에 여러 색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기법영향인데 그리는 것으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송근영 작가의 작품화면 바탕은 색, 먹, 선 등으로 배경을 처리하는데 흰 바탕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라 할 만하다. 그런 면에서 검은 바탕에 얇은 금박이 올라간 한지를 찢어 붙여 참외모양을 본뜬 도자기를 만들고 거기에 매화를 꽂은 감각적인 작품은 자연물을 본떠 현대성을 융합한 빼어난 미감을 선사한다. 나아가 관람의 신선함을 불러일으키는 나뭇가지의 다채로운 색채와 자연스러운 구부러짐의 절묘한 어울림은 새로움과 생장의지를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작가도 “나의 작업은 수묵화가 기본이지만 발묵과 마블링의 우연성 효과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보여 준다”라고 풀이했다.

이와 함께 그의 작품엔 매화, 진달래를 비롯하여 국화, 난초, 설경, 새와 인물, 공작새도 등장한다.

어렸을 적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자란 작가는 별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 안에 주로 있었다고 한다. 그런 손녀를 위해 할머니가 여러 가지 꽃이며 앵두나무 등으로 예쁘게 뜰을 꾸미고 공작새와 금계(金鷄)도 키우셨다. 그 시절 철마다 피었던 꽃과 얘기를 나누었던 순수한 감성이 지금도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했다.

한국화가 송근영 작가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지난 1999년 서울 인사동 모인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금호미술관, 갤러리 한옥 등에서 개인전을 14회 가졌다.

화가로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에 대해 물어 보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느끼는지에 대한,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한민족의 미감인 고유의 정체성은 단아함이라고 여긴다. 나의 매화도(Plum Flowers)연작도 제 계절에 많이 그리고 그때라야 그림의 제 맛이 난다는 작업자세의 인식도 실상 이와 다르지 않다. 앞으로 매화나 진달래 같은 소재로 대작(大作)을 할 계획인데 물의 흐름 같은 움직임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우리고유의 재료를 쓰지만 느낌은 매우 현대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것이 지향의 모토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작품캡션

Plum Flowers, 220×76㎝ chinese ink, collage and color on paper, 2016 △(왼쪽)Plum Flowers, 50×65㎝, 2013 △(오른쪽)Spring, 44.5×57㎝, 2016

송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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