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김명진… ‘靜中動’시리즈 작품세계

나비 날아드니 어느새 꽃들이 만발하네. 부드러운 햇살 잔바람이어라. 정적의 오솔길 바위 옆, 시샘에 바르르 몸을 떠는 저저 하양나비! “靜中靜(정중정)은 非眞靜(비진정)이라 動處(동처)에 靜得來(정득래)라야 纔是性天之眞境(재시성천지진경)이요. 고요한 곳에서 고요함을 지키는 것은 참다운 고요함이 아니다. 소란 속에서 고요를 지켜야만 마음의 참다운 경지에 이를 수 있다.”<채근담, 홍자성 著, 이규호 譯, 문예춘추사>

화면은 맑은 햇살아래 투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한가로움과 따스함이 느껴온다. 자연에서 감흥을 얻은 일상적인 색채가 더욱 친근하게 하여 하나 된 관람감성으로 인도한다. 아이는 ‘손녀’다. 할머니와 사랑스러운 눈빛이 서로 교감되는 수정같이 영롱한 눈동자가 반짝반짝 거린다.

“손녀가 어느 날 내 앞에서 제법 그럴싸한 동작으로 창(唱)을 들려주었다. 신선하고도 놀라웠고, 감명깊었다. 잘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재능을 갖췄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불현듯 지금 이 순간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일었다.”

낭랑한 목소리에 담긴 순수세계의 물결이 그림으로 이끈 것일까.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순리를 가슴으로 껴안은 할머니는 붓을 들고 망설임 없이 그려나갔다. “아이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도톰한 손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재간에 노력을 더하면 네 꿈은 펼쳐질 것이고 앵두 같은 입술에 색동저고리를 입고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꿈을 이루기 바란단다. 앞으로 자신의 소망을 실현시키려는 소녀가 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숙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붓질했다”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선홍 빛깔 맵시를 한껏 드러낸 딸기가 탐스럽게 한 소쿠리 담겨 있다. 새콤달콤한 향기 가득하고 입안의 침을 돌게하는 그 미각 속에 따사로운 유년의 기억이 피어난다. 명제 ‘기다림’처럼 빨갛게 잘 익은 딸기를 하나하나 담으면서 자식의 입에 넣어주려는 모정이 강렬하게 밀려든다.

“오는 나비이네 그 등에 무엇일까/몰라 빈 집 마당 켠 기운 한낮의 외로운 그늘 한 뼘일까/아기만 혼자 남아 먹다 흘린 밥알과 김칫국물 비어져나오는 울음일까/나오다 턱에 앞자락에 더께지는 땟국물 같은 울음일까/돌보는 이 없는 대낮을 지고 눈시린 적막하나 지고 가는데, 대체 어디까지나 가나 나비”<김사인 詩, 나비, 창비>

나를 기다리고 설렘 주는, 친구

경기도 고양시에 작업실이 있는 작가는 외부에 있다가 귀가했을 때 작업 중이거나 막 시작하려는 한지가 자신을 반겨준다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순지를 대할 때 처음에는 두려움이 있으나 점점 색채를 표현해나갈 때 그림 속 물감과 물의 어울림처럼 종이와 내가 함께 화면 위에서 몰입하게 된다. 조용한 침묵 속 명상적 흐름에 유영하는 집중은 생의 충만감과 내 속에서 잔잔히 한 덩어리 되는 뜨거운 성찰과의 해후를 안겨준다”라고 했다.

김명진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했고 우림갤러리 등 개인전과 ‘2016대한민국 국전작가회’에 출품했다. 작품모토 정중동(靜中動)’시리즈는 사물을 표현할 때 섬세하고 꼼꼼하게 대상을 그려내는 구상적 표현이 더해져 간결하면서도 깔끔한 의미의 전달로 다가온다. 사물들이 정적인 모습을 띠고 있으나 그 속에서 변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그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인가 물어 보았다. “붓을 들 때마다 새로운 만남처럼 영혼의 희열감이 스치며 그 속에 빠져드는 묘한 기쁨을 느낀다.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생을 아름답게 춤추는 것 같은 전율을 선사한다. 나를 쳐다보고 기다려주고 설레게 하며 나아가 자아를 승화시켜주는 그림친구를 사랑한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작품설명

-△(왼쪽)靜中動-초충도, 46×38㎝ 장지위에 수간채색, 2014 △(오른쪽)손녀, 73×60㎝, 켄트지에 색연필과 파스텔, 2013

-기다림, 65×54㎝ 순지에 채색, 2013

-한국화가 김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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