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대학로 나온씨어터 10월월 19∼30일

누구나에게 과거가 있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가 있다. 삶이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의지와 무관하게 타자에 노출되고 ‘관계’를 강요받기도 한다.

개인이 시대를 인식하고 느끼고 반응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그런 개인과 시대와의 관계성을 심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19일 서울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막이 오른 ‘스톡홀름’ 이다.

‘스톡홀름’ 의 등장 인물과 대사는 문득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이 무엇을 망설이는지 알지 못하는 가상의 햄릿과 아들의 불만과 비난 앞에 당당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 한 자칭 거트루드, 살인과 찬탈에 일말의 죄의식도 갖지 않는 일명 클로디어스와 자기가 왜 죽었는지 알지 못해 답답해하는 선왕 햄릿의 그림자, 그리고 외면당한 상처의 아픔을 자기연민의 형식으로 즐기는 나르시시스트 오필리어의 허깨비쯤 되는 존재들이 두서없이 부조리한 대화를 이어간다.

가령 술에 취한 여인이 횡설수설 하는 사이, 가상의 햄릿이 등장해 “이제는 까놓고 말할 때도 되지 않았냐” 묻는다. 거트루드는 “모든 건 습관이야”라며 “그만하라” 외친다. 삼촌 클로디어스는 “형 때문이야” 를 반복하고, 선왕 햄릿은 수시로 노래한다. 자기연민에 빠진 오필리어는 끊임없이 “수녀원으로 갈 거야” 중얼거린다.

언뜻 ‘햄릿’의 연극적 변형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햄릿의 서사와는 거의 무관하다. ‘스톡홀름’은 미리 정해지거나 계획된 결말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연극적 플롯도 서사도 없다. 생각이 가는 대로, 감각이 이끄는 대로 일종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진행된다.

그런 두서 없고 부조리한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 46명의 수병들은 앞으로 옆으로 또 어딘가로 계속 전진한다. 문득 2010년 3월 26일 밤 46명의 장병과 함께 침몰한 천안함 사건과 오버랩된다. 정부는 이를 북한의 피격으로 인한 ‘천안함 피격사건’이라 부르지만 작품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말한다. 도처에 숨겨진 수많은 거짓말들 사이 어딘가에 햄릿의 처철한 외침 너머에 있는. 이는 ‘스톡홀름’의 부제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와 맞닿는다. ‘사랑은 아름답다’는 ‘거짓’은 또한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는 ‘진실’을 함의한다.

‘스톡홀름’은 ‘침몰하는 배’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헤아릴 수 없는 부당함에 머리가 아닌 가슴, 정서적으로 반응토록 한다.

“모른다. 몰랐다. 알 수 없다.” 작품은 지난날을 반성할 줄도, 앞으로 나아갈 줄도 ‘정말 모르는’ 사람들의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술에 취한 듯, 혹은 미친 듯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등장해 자신도 모르는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동안 우리는 그 무엇인가를 저절로 ‘알게’ 된다.

‘스톡홀름’은 뭐 하나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동시에 굉장한 것이 까발려지는 느낌, 스토리가 차곡차곡 쌓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가슴을 때리는 무언가와 만날 수 있는 무대다.

형식에 갇히지 않고 ‘붓 가는 대로’ 내밀한 속내를 자유롭게 쓴 수필처럼,‘생각이 가는 대로, 감각이 이끄는 대로’ 그 무엇에도 자신을 속박시키지 않고 배우와 함께 리듬과 음악, 언어를 즐기다 보면 온몸을 타고 흐르는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어떤 느낌과 마주하게 된다. 10월 30일까지 공연. 02)742-7563

박종진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