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연기 60년 작 ‘세일즈맨의 죽음’…22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5개 도시 투어

‘영화는 감독의 예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연극은 편집도 없고, 오롯이 배우가 몫을 감당해야 하는 예술이다. 그만큼 연극에서 배우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원로배우 이순재가 연기 인생 60주년을 맞아 세계적 명작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섰다. 공연은 지난 3∼4일 광주 공연에서 90% 이상의 높은 객석 점유율을 보인데 이어 13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도 성황리에 막을 올렸다.

이순재의 연기인생 60년이 집약된 ‘세일즈맨의 죽음’은 평범한 미국 중산층인 윌리 로먼을 통해 자본주의의 잔인함을 고발하고, 개인의 인간성 회복을 호소하는 동시에 당시 미국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함께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극은 외판원 윌리 로먼이 출장에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30년 동안 외판원으로 살아오면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가진 윌리 로먼은 성실하게 일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을 갖고 이것을 아들에게 투영한다. 하지만 두 아들 비프와 해피는 윌리의 기대와는 다른 삶을 산다. 외판원으로서 행복했던 시대는 지나가고 해고 위기에 처한다. 비프는 아버지의 비현실성을 견디지 못한다. 윌리는 자신의 기대와는 반대로 어긋나는 삶과 아들의 실패를 보며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원작은 1940년대 작품이지만 그 이면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듯하다. 극은 자본과 물질의 속도에 채여 뒷걸음질 치며 고단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현대인의 팍팍한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런 울림은 이순재의 60년 연기내공과 베테랑 출연진들의 호흡이 깊이를 더하며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순재에겐 1978년 초연 이래 네 번째다. 연기 인생 60주년 작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것에 대해 “세월이 갈수록 새로운 의미와 의도를 발견하는 게 고전”이라며 “작품이 지닌 심오한 철학적 내용이나 깊이를 담기 위해 원작에 충실했다”고 말한다. 가령 1막 끝무렵에 “달이 아파트 사이로 간다”는 대사는 달의 영역이 축소됐다는 것으로 세일즈맨 자신의 사회적 영역이 축소된 것에 비유한 비탄인데 이를 60년 경륜의 깊이로 해석해 디테일하게 전한다.

놀라운 것은 여든이 넘은 노배우가 3시간 동안 무대에서 580마디라는 어마어마한 대사를 소화하는 것이다.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윌리는 이순재 자체다. 이는 막이 내린 뒤 관객들이“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너무 아팠다”“보는 내내 부모님이 생각나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등의 화답으로 나타난다.

‘최대한 원작 그대로, 철저하게 배우 중심으로’의 원칙으로 무대를 꾸민 박병수 연출가와 함께 손숙이 아내 린다 로먼을 맡아 부부로서의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며 중견 배우 이문수가 윌리 로먼의 형으로, 연기파 배우 맹봉학과 김태훈이 친구인 찰리 역으로 출연한다.

서울 공연은 22일까지 이어지며, 내년 1월~2월 사이 대전(1월 13∼14일), 수원(2월 4∼5일 예정), 의정부(2월 10∼11일), 울산(2월 24∼25일), 경주(2월 28일∼3월 1일)에서 공연한다.

박종진 기자

-사진 ;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의 한 장면.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