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임무상…‘곡선미의 찬가-산, 소나무, 달 그리고’ 연작세계

“인류의 존속을 확보해 주는 사회적 규칙들, 교육, 미신, 토템과 터부, 입법 활동 등도 공동체의 개념에 종속되어야 하고 그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중략) 신뢰성, 충성심, 솔직함, 진실에 대한 사랑, 그 밖의 것들은 공동생활의 보편타당한 원칙에 의해서만 설정되고 유지될 수 있는 미덕들이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지음, 아들러의 인간이해, 홍혜경 옮김, 을유문화사>

말간 물색에 홀려 발을 담그면 청랭한 촉감이 혈맥을 타고 온 몸으로 번질 듯한 백두산 천지(天池)다. 단군신화 발원지로 한민족 정신사를 껴안은 봉우리들과 산등성이와 절벽이 깊은 수행의 정결하고 평온한 눈가 주름처럼 숭앙과 미묘한 고독감에 젖게 한다.

‘신미년팔월 백두산’작품은 임 화백이 지난 1991년 여름, 그곳을 다녀온 후 간직했던 감흥을 무려 20년 뒤인 2011년에 펼친 회심의 역작이다. 천 위에 황토, 벼룻돌가루, 도자안료, 호분 등 천연혼합재료를 몽당붓으로 여러 번 쌓아올려 6개월에 걸쳐 500호 대작을 채색빛깔로 그려냈는데 “화창하고 깨끗한 천지를 볼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풍경이 아니라 주변 장군봉을 비롯해 눈부시도록 밀려오는 장엄한 감동을 담으려 했다”라고 밝혔다.

또 전남 해남군 육지 최남단 도량인 미황사를 품은 달마산엔 해남반도를 건너 막 뭍으로 들어온 초저녁 달빛이 저녁 해풍에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노송 어깨를 슬쩍 건드린다. 달은 뜨고 풍경은 일순 고고한 자태를 드러낸다. 적요한 침묵의 시간에 바다가 산이 되고 산이 내가 되는 것인가.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윤회 위로 자욱한 운무가 무심히 지나갈 뿐이다.

그림, 스스로 터득하는 것

화면은 호방한 운필과 선염 그리고 우리 정서에 익숙한 곡선의 모습들로 정체성을 함의하고 있다. 독창적 조형언어 ‘린(隣)-곡선공동체의 미’는 양지바른 곳 옹기종기 모여 살던 초가집들에서 모티브를 얻은 화법이다.

화백은 “콩 한 쪽도 나눠먹던 농경사회 유현한 심성의 인본정신이 깃든 형상화 작업과 다름 아니다. 이것은 원융(圓融)한 것이다. 하나가 모두요, 모두가 하나 됨을 뜻하여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화폭에 구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임무상 작가는 경북 문경군 산북면 출신으로 문경중학교를 졸업하고 청운의 화가 꿈을 안고 상경, 서라벌고와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수료했다. 지난 1991년 롯데미술관 ‘고향유정’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998년 동덕아트갤러리 전시에 ‘린’이 처음 등장하고 2000년 월드아트센터, 2002년 공평아트센터에서 전시명제로 본격화된다.

이와 함께 2013~2015년은 프랑스와 이태리를 중심으로 해외전시 호평의 주요한 전기를 맞는 기간으로 기록된다. 2013년 파리 중심부 갤러리 셀렉티브 아트에서는 앙코르까지 많은 갈채를 받았고 이어 이태리 파도바 아바노 지역의 갤러리 아트시마 및 순회전시, 빌라 드라지 몽테그로토 박물관 개관 초대전도 매우 의미 있는 행보였다. 2014년 프랑스 그로노블에서 열린 마운틴 플래닛 박람회와 2015년 브르타뉴지역 트레가스텔 시의회센터 ‘海松’전시에서 공로패를 받는 등 열정과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한편 지난해 12월, 스물두 번째 개인전을 가진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특별관 전시기간에 화백을 만났다. “나는 일곱 살 때 화가의 꿈을 가졌다. 아버지가 읍내 장에서 돌아오실 때 종이를 사주셨는데 그것이 일생을 두고 내 화업을 고취시킨 밑거름이 되었다. 어느새 희수(喜壽)가 멀지 않았으니 이 길을 가슴으로 받아들인 것을 따져보면 참으로 오랜 세월이다. 내 그림의 곡선화법은 특정한 소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삼라만상을 풀어가는 것이다. 다시금 요즈음 그림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터득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권동철 @hankooki.com

#작품캡션

-辛未年八月 白頭山(신미년팔월 백두산), 430×151㎝, 천, 먹, 천연혼합채색, 2011

-達摩山 美黃寺(달마산 미황사), 95×57㎝ 한지, 먹, 혼합채색, 2012

-삼강 임무상 화백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