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박은숙… ‘근원-빛으로’특별전, 3월 31일까지 ‘The-K호텔 서울’

‘덤불 속에 이는 바람과 새의 휘파람 소리 드높은 하늘의 짙은 청색 고요하고, 당당히 떠가는 구름의 배…나는 금발 머리의 여인을 꿈꾼다. 나의 청춘 시절을 꿈꾼다. 푸르고 광활한 저 높은 하늘은 내 향수의 요람, 그 안에서 나는 고요한 심정으로, 지극한 행복과 따사로움 속에 누워 나직이 중얼거린다. 어머니의 품안에 누운 어린아이처럼.”<헤르만 헤세 詩 봄날,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中, 두행숙 옮김, 문예춘추사>

눈부시게 반짝이는 거대한 원석들을 하나씩 알처럼 품은 첩첩산중 꼭대기 광야에 은밀하게 펼쳐진 암석의 행렬, 포말로 부서지는 해안에 드러나는 광대한 시간의 빼곡한 발자취, 수천 수만 밤하늘의 은하와 원소의 코스몰로지(Cosmology)…. 화면은 삼각뿔을 비롯한 각뿔 그리고 기둥, 원과 원통, 선 등의 기호와 맑고 따뜻한 색채감이 어울리면서 태고의 어떤 신비스러운 비밀을 간직한 환상적 풍경을 펼친다. 청아하고도 상쾌함을, 어딘지 우수에 젖은 플루트선율이 여트막한 산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광원에 스민다. 크고 작은 존재들은 조화를 이루기에 서로가 돋보이는 진리를 터득한지 오래로 그런 형태를 소중하게 보듬는다.

프랑스 작곡가 요제프 캉틀루브(Joseph Canteloube)의 가식 없는 순박한 ‘오베르뉴의 노래(Chants d’Auvergne)’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초목, 스스로 기꺼이 즐거우며 흘러가는 물줄기, 오렌지스카프를 두른 채 여운의 뒷모습을 남기며 사라지는 황혼을 위무한다. 아가페의 잔잔한 숭고의 고요처럼 어떤 흐름이 가까이, 저 먼먼 아득한 곳까지 번진다. 억겁세월의 자국인가. 기록의 서시를 간직한 필첩(筆帖)을 펼치자 각양각색 원초성의 형상들이 오랜 기다림처럼 드러났다.

환희로 가득한 환상적인 봄날의 따뜻한 햇살이 쏟아졌고 잎사귀는 생기로 돋아났다. 숲길을 가벼이 산보하며 자연 속 기운을 받으면서 ‘내’가 빛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단문의 글이 가슴에 와락 박힌다. “보이는 것 모두 꽃, 생각하는 것 모두 달”<바쇼 하이쿠 선집, 마쓰오 바쇼 지음, 류시화 옮김, 열림원>

살아가는 것의 기쁨

작가는 1978년 그로리치화랑에서 ‘근원’시리즈로 첫 개인전을 가졌다. 나무뿌리와 나무기둥을 분해하고 형상화한 반추상이었는데 1990년대에 들어와 이는 더욱 단순화되고 현재의 작품경향을 띠는 형태가 드러난다. 2000년대 들어와 빛이 조형적으로 들어오면서 화면이 더욱 풍성해졌다. 여기에 조개껍질과 석채를 조금 섞어서 마티에르를 낸 개체들이 리듬적 관계성을 이뤄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유기체적 생동감을 공유하며 정답고 흐뭇한 느낌을 전하는 세계로 이끈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생명의 근원에 천착해 온 나의 작업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기본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다. 자연과 천체우주와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쁨이고 일상에서 생령이 움트는 내 안에 있는 충만함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러한 조화로운 빛남 가운데 ‘나’를 꽃 피우고 싶다.”

박은숙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선화랑, 에바이트 갤러리(파리, 프랑스), 가나아트스페이스, 인사아트센터, 청작화랑 등에서 개인전을 25회 가졌다. 이번 ‘근원-빛으로’특별전은 서울시 서초구 바우뫼로 소재, ‘The-K호텔 서울’ 1층 로비에서 2월 1일 오픈하여 3월 31일까지 열린다.

럭셔리한 로비라운지에서 작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화가의 길에 대한 소회를 물어보았다. “욕망을 다스리는 하나의 수단이자 관람자와 공감할 수 있는 행복한 도구일진데 나를 수행해가는 궁극의 과정이다. 내 의지대로 표현할 수 있는 캔버스라는 공간이 있다는 것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권동철 @hankooki.com

-Origin-Pray, 194×112㎝ Mixed Media on Canvas, 2013

-Origin-Delight, 259×194㎝ Mixed Media on Canvas, 2011

-여류화가 박은숙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